현기증을 느끼며 그는 머저리 같은 행동을 하는 상상을 했다. 위층으로 올라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고 광택을 낸 부엌 탁자 위에 던진 뒤, 뒤엉켜 있는 보석 전부를 그녀에게 주면서 제발 가져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을 말이다. 이상하게도, 미친 듯이, 그는 이 침울하고 가혹한 여주인의 발아래 무릎 꿇고 싶었다. 그는 그녀에게 피든 목숨이든 보석이든, 무엇이든 바치고 싶었다. 그녀의 시선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한 번만 더, 존경과 욕망이 뒤섞인 그 기묘한 표정을······ - P48

여자는 욕실로 사용하는 작은 방에 목욕 가운을 입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맨어깨를 드러낸, 치장 중인 여성 특유의 미묘하게 무장해제된 모습이었다. 게레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난폭한 군인처럼, 혹은 어설픈 소년처럼 그녀를 양팔에 가두고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그를 향해 모습을 드러낸 믿을 수 없을 만큼 욕구를 자극하는 여자의 관능적인 둥근 어깨와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순간, 거울 너머로 그녀가 그녀 자신에게 보내는 승리의 눈빛과 흥미가 담긴 미소를 그는 보지 못했다. - P52

게레는 네온사인 거울에 비친 자신을, 마치 첫 영성체를 위해 한껏 차려입은 웃자란 소년처럼 우스운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런데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그런 식으로 웃은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사실 인생을 통틀어보아도,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 누구와도 그렇게 웃었던 기억이 없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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