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아, 군대에서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던 장소도 기억 속에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바뀌었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다. 어렸을 적에 배운 노래는 되도록 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자주 불러대면 추억이 퇴색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대에서의 일들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회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추억은 머릿속에 소중히 간직해 두는 걸로 족하다. 내 머릿속에는 추억의 서랍이 있다. 나에게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P86

오후 5시였다. 거센 바람에 코트가 마치 스커트처럼 나부꼈다. - P90

일꾼 한 명이 거룻배에 연결된 판자 위를 튕겨 오를 듯한 발걸음으로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침대 매트리스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 P91

주위 풍경이 센강에 수직으로 비치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바다표범이 헤엄이라도 치고 있는 것처럼 수면은 쉬지 않고 흔들렸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반대편 강가에 있는 집들이 수면과 같은 높이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네치아의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 P96

나는 죽기 싫었다. 게다가 만약 죽는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끌려서 억지로 죽기는 싫었다. 자살이란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한다. 자살은 보통의 일반적인 죽음과는 다르니까. - P96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 원인은 언제나 나의 고독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갈망한다. 다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기회가 없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말하자면 한겨울밤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지와 비슷한 처지다. 사람들은 그거지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거지를가장해 돈을 구걸하려는 사람이 하도 많아, 이미 모두들이력이 나고 만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다리 난간에 팔을 괸 채 무료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있어도 어차피 시시한 연극이려니 생각하고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만다. 사실 그렇긴 하다. 연극이라는 걸 꿰뚫어 본 사람들이 정확히 본 것이다.
다만 남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한밤중에 다리 위에서 구걸을 한다거나, 난간에 기대 우울한 척을 하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서글픈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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