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로 한동안 생면부지의 그 남자 생각을 계속했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도 자기가 나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았는지 신경 쓰고 있을까? 누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길 원할 것이다. - P67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컬이 있는 구불구불한 머리가램프 불빛 아래에서 타오르는 듯 물결쳤다. 나는 맥이 탁 풀린 나머지 멍하니 문 앞에 멈춰 섰다. 도망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하기위해 문 앞으로 걸어왔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녀의 따뜻한 숨결이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비야르의 어깨를 툭툭 쳐주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나는 손을 슬그머니 집어넣으며 방금 전의 지나친 용기가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튼 소리를 내어 웃고 싶었다.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비야르의 여자 친구는 절름발이였던 것이다. - P69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떨어진 빗방울 위에 또 다른 빗방울이 겹쳐 떨어지지는 않았다. - P74
오후 3시였다. 하루 중 가장 끔찍한 시간이다. 일상의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에도 나는 즐거워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아주 작고 하찮은 일조차 생기지 않는다. - P76
니나를 만나러 가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조금씩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럴 용기는 있었다. 왜냐하면 여자와 단둘이 있을 때는 나의 소심함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리 머뭇거려도, 그런 점이 오히려 상대에게 호감을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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