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 쪽임이 분명한 자리에서 붉은 병을 집어 들었다. 그 병은 길쭉한 직사각형에 크기가 꽤 컸다. 병에 굵게 쓰인 붉고 희고 파란 글씨가 나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3배 더 큰 용량
당신의 존엄만은 남겨 두고
남자의 향기로 무장하라.
더러움을 차버리고
악취를 박살내라.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내 아들이 여기서 사워를 하는 건지, 전쟁을 준비하는 건지?
나는 여자아이들의 가날프고 반짝이는 분홍 병들 중 하나를 들어 보았다. 그 병에는 나를 향해 짖어대던 군대식 명령문들 대신 필기체로 속삭이듯 흘려 쓴, 뜬금없는 형용사들이 있었다. 매혹적이고 윤기 있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반짝이고 도발적이며 가볍고 매끄러운. 동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여기에는 해야 하는 행동은 없고, 그저 그렇게 보여야 하는 모습들의 목록만 있었다. - P29
샤워를 하는 것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의 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정말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당연히 아니었다. 21세기인데도 남자 아이들은 여전히 진정한 남자는 크고 거칠고 폭력적이며, 참을 성이 없고 여성성에 혐오감을 가지며, 여자와 세상을 정복할 책임이 있는 존재라고 배우고 있었다. 반면 여자아이들은 진정한 여자는 조용하고, 예쁘고 작고 수동적이며, 정복당할 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그 무엇이어야만 하는 대상임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은 여전히 아침에 옷을 차려입기 전에 그들의 온전한 인간성을 부끄럽게 여기도록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커다란 존재다. 대량 생산된 이 딱딱하고 작은 병 속에는 자신을 육여넣을 수가 없다. 그러나 결국은 어느새 거기에 맞춰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