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혼돈이라는 막무가내인 힘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야말로 우연히 우리를 만든 것이자 언제라도 우리를 파괴할 힘이라고 말이다. "혼돈은 우리의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다. 우리의 꿈, 우리의 의도, 우리의 가장 고결한 행동도. 절대 잊지 마라." 데크 아래 솔잎들이 쌓인 땅을 가리키며 아버지가 말했다. "너한테는 네가 아무리 특별하게 느껴지더라도 너는 한 마리 개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걸.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더 중요하지는 않아." 당신 머릿속에 존재하는 위계의 지도를 들여다보느라 아버지는 여기서 잠시말을 멈췄다. "과연 네가 토양 속에서 환기를 시킬 수 있을까? 목재를 갉아 먹어 분해의 속도를 높이는 일은?" - P55

"나는 네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런 면에서 지구에게 넌 개미 한 마리보다 덜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지." - P55

"좋아. 이제 이게… 전체 시간의 길이라고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자기 가슴 앞에 펼쳐진 눈에 보이지 않는 광대한 시간의 선을 손으로 더듬었다. "여기서 인간이 존재한 기간은 요만큼이야!" ‘요만큼‘이라는 말을 할 때 아버지는 연극적인 동작으로 꼬집듯이 손가락들을 모았다. "게다가 우리는 아마 곧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러니까 만약 지구 저 멀리서 떨어져서 본다면…" 여기서 아버지는 혀를 차서 끽끽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지. 거기엔 행성들이 있고, 그 너머엔 더 많은 태양계가 있어…" - P55

거의 20년 뒤 천문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우리는 점 위의 점 위의 점이다" - P56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 P57

나는 더 용감한 여자아이, 더 견고한 영혼을 지닌 여자아이라면 그런 말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문제들이 얼마나 사소한 것들인지도 잘 알았다. 하지만 내 안에는 그게 없었다. 그게 뭐였든 간에 말이다. 튼튼한 뼈대처럼 강한 기개를 찾으려 더듬거렸을 때 내 손에 잡히는 건 모래뿐이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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