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들어서 외울 정도인 그런 유의 비슷비슷한 점괘들 중에 그래도 하나 마음에 남은 건 ‘이 사람 마음 한구석에는 절이 지어져 있다‘는 말이었다. 같은 말이어도 그림이 그려지는 표현이어서였을까. 그 말을 들은 이후로는 이런저런 일들에 치여서 쉬고 싶거나 속이 시끄러울 때면 내 마음속에 지어져있다는 절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 P141

하지만 소주를 따서 자작하기 시작하니 주변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오며 가며 쳐다보는 시선이 확연히 늘었고, 눈이 마주쳤는데 피할 생각도 없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원래 먹던 상에 그냥 술 한 병 더 추가됐을 뿐인데 갑자기 추가된 것들이 많아졌다. 권여선 소설가는 산문집 『오늘 뭐 먹지?』에서 순댓국집에서 순댓국에 소주를 시켜 혼자 마시는 여자에게 "쏟아지는 다종다기한 시선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혼자 와인 바에서 샐러드에 와인을 마신다면 받지 않아도 좋을 그 시선들"이라고 썼는데, 정말 그랬다. 그동안 오직 바에서만 혼자 술을 마셔봤던 나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시선들이었다. 권여선 소설가처럼 "그들에게 메롱이라도 한 기분"이라고 호쾌하게 받아넘기기까지 소주 반병이 소요됐다. - P147

"한 장만 먹으면 막걸리 남잖아요. 한 병엔 두 장이지."
난 그만 아주머니에게 반할 뻔했다. 김치전을 한 장 더 주신 것도 주신 거지만, 이렇게 한 쌍으로 묶이는 두 가지 음식의 소진 속도와 적절한 양적 균형에까지 생각이 미치는 사람은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새 한 김 식은 김치전은 적당히 따뜻했고 당연히 맛있었고 아주머니 말대로 막걸리 한 병과 똑떨어졌다. - P150

이니셜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다. 사실 여자들의 혼술에는 예전부터 감수해야 할 몫들이늘 있어왔다. 냉채족발집에서 겪은 것 같은 묘한 시선들은 많게든 적게든 종종 따라붙었다. 주문을 받는 가게 주인의 탐탁지 않은 표정을 대면할 때도 있었다.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이야~ 세상 참 좋아졌다. 여자가 초저녁부터 밖에서 혼자 술도 마실 수 있고" 같은, 세상이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이유 그 자체인 사람들의 비아냥 섞인 시비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때로는 그 뒤에 시비의 강도가 거세져도 말릴 생각 않고 거기에 슬쩍 묻어 힐난의 눈빛을 던지는 가게 주인이나 주변 손님들의 이야기가 덧붙기도 했다. 그런 경우 대개는 여자가 결국 자리를 떠나곤 했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밥집에서 혼자 반주를 마시는 여자를 괘씸해하는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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