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일을 쉬어야 해? 왜 나만 병원에 있어야 해? 야 네 애가 저렇게 누워 있는데 너는 병원에 오는 게 그렇게 귀찮니?가 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억누르고 있던 말들이었다. 원색 크레파스로 아무렇게나 북북 그어놓은 듯한 날것의 감정들, 지하철에서 흔히 보이는 광인들의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초점 없는 혼잣말과 욕설이 은정의 입에서 방언처럼 줄줄 새어 나왔다. - P26
왜 유능한 여자는 식으로 절구 속에서 마늘처럼 빻아지고 마는 걸까? 다 큰 어른들이면서 왜 동료를 저런 식으로 모함하는 걸까? - P30
헤어 디자이너는 오랫동안 지현이 꿈꾸던 외길이었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았지만 혼자서 눈물나게 노력해 드디어 얻어낸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자랑스럽지 않아졌다. 머리를 자르는 일, 단백질을 먹고 소화시켜 머리카락으로 바꾸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 일 자체에는 잘못이 없었다. 그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시술들이 갑자기 낯설고 이상하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 - P36
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함께 온 남자친구의 허락을 받아야 긴머리를 짧게 자를 수 있다고 생각하 는 것일까. 남자들은 대체로 안 된다고 했고, 그러면 여자들은 그냥 머리끝을 다듬거나 귀여워 보이는 파마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갔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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