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을 사랑한댔지. 나를 사랑했던 것처럼. 이제는 아니지만"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이미 했던 이야기잖아, 필립."
"진짜라는 거네"
"응. 나는 결함을 사랑해." 그녀는 움찔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이제 입 밖으로 내기가 편안해진 듯했다.
"나는 당신에게 너무 현실적이었던 건가? 상상 속 존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줄 몰랐네."
"결함은 진짜야, 필립. 우리를 찾아온 거야. 외계인처럼."
"앨리스, 결함은 하나의 관념일 뿐이야. 당신을 투영해 만들어진."
그녀는 반항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결함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그 누군가보다 훨씬 나은 관념이야. 완벽함과 사랑, 완벽한 사랑 그 자체야."
"석류에 대한 사랑, 계산자에 대한 사랑이 완벽하단 말이야?"
"맞아. 결함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야." - P154

"나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거야. 결함보다 더 수수께끼처럼 굴 수는 없으니까. 존재하는지조차 알기 어렵게 굴잖아" 앨리스는 붉어진 눈으로 나를 빤히 보았다. "당신은 여기 있어. 나는 갈게. 여기서 흔자 울어.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혼자 울게. 똑같이 처참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섬이 되는 거야. 당신은 여기 아래에, 나는 저 위에" - P157

우리는 둘 다 눈물을 흘렸다. 두 장님과 아파트를 떠올리니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는 공허하고 황량한 우주가 아닌 지구 어딘가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침실과 침대가 있는 평범한 장소. 자동차와 우리 집, 결합이 삼킨 소리굽쇠, 도자기, 재떨이와 두 장님의 딱딱거리는 지팡이 같은 일상적인 물건들이 무거운 추가 되어 우리를 공허에서 꺼내 주는 것 같았다. - P158

나는 우리 사이 공간을 기어가 그녀를 안았다. 내 팔을 그녀의 어깨에 두르고 얼굴은 그녀의 머리칼에 묻었다. 우리는 함께 울었다. 우리 두 사람의 몸은 하나였다. 빈 곳 없이 서로에게 딱 맞는, 대체할 수 없는 두 개의 조각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체로 하나의 시스템이었고, 우주였다. 그 순간만큼은.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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