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린네의 용어 호모 사피엔스는 "지혜로운 인간/남자 man ofwisdom"를 뜻하는데, 이는 거의 전적으로 백인 남성에 귀속되는 특징인 이성을 통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 P173

<가장 가까운 친족>에서 파우츠는 자신이 과학자의 가장요한 규칙을 어겼다고 썼다. "연구 대상을 사랑하지 마라."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 그 규칙을 깨뜨려주길 바란다. - P182

동물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 나는 이것이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분리시킨다는 걸 알고 있었다. - P189

동물과 비교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강도 높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가 동물들에게는 주체적이며 정서적인 삶, 즉 우리로 하여금 책임감을 갖고 대하게 만드는 종류의 삶이 결여되어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서구 전통에서 동물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런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 존재들의 범주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고팔고 물건처럼 처분할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를 동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아무런 책무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어떤 죄책감도 없이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P195

"종차별주의 담론은 언제나 하나의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공격하는 데 쓰일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종에 속한 사회적 타자 혹은 종뿐만 아니라 성별, 인종, 계급 등으로 구분된 사회적 타자들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 P195

인간과 동물의 전시는 종교적·과학적·식민주의적 실천들과 긴밀하게 엮여 있는 하나의 계보를 공유한다. 중세시대에 왕의 힘을 상징했던, 살아 있는 기형의 존재들을 대상으로 한 컬렉션부터 서구 식민지 세력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19세기의 동물원, 사이드 쇼, 만국박람회까지, 인간과 동물들의 전시 혹은 소위 "식민지 상품들"은 오랫동안 경제적·문화적으로 얽혀왔다. - P197

그들은 과연 동물 취급을 받아도 괜찮은 존재인 걸까.
동물들이 인간의 손에 끔찍한 폭력을 당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폭력은 흔히 인간들이 서로에게 휘둘러 온 폭력과 같은 계보를 공유한다. 동물들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우리가 동물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뿐 아니라, 동물들이 우리의 친족kin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의 사례로 본다면 어떨까? 동물임을 자처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동물화와 종차별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일수도 있다면 어떨까? 즉 동물해방이 우리 자신의 해방과 얽혀 있음을 인식하는 방식이라면? - P198

장애 문화에 동물로의 전환 animal turn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이를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동물들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음을, 동물들을 전적으로 친족으로 간주하는 것이 안전한지를 묻는 조짐 등을 느낄 수 있다. 동물을 장애와 결부시켜 고찰하는 것이 여전히 비하적인 함의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풍부하고 생산적으로, 그리고 통찰력이 돋보이도록 만들 수 있을까? - P207

애초에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나의 자연스러운 몸이란 무엇인가? 어디에 있는가?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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