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유리 저편의 고릴라, 오소리, 기린, 흰돌고래, 왈라비 등이 전시 동물로서의 자기 삶을 버텨내기 위해 발리움 Valium이나 프로작Prozac 등의 항정신성 약물을 투약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기쁜 소식이 아니다" - P95
이 모든 것은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대하는 방식,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인간 동물을 학대하는 방식에 심각한 윤리 문제를 제기한다. 이 경우, 장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을 시작하기조차 어렵다. 어떻게 감금, 학대, 방치, 교배 그리고 고통과 장애를 분리할 수 있겠는가. 그 어떤 움직임이나 욕망도 인정받지못한 채 무시당하는 환경에서 사는 암탉에게 장애란 무엇을 의미할까? 환경이 모든 것을 한계지어 스스로의 몸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고 탐색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할 때 신체적인 제약이나 차이는 무엇을 뜻할까? 많은 장애인들이 그렇듯, 이 동물들에게도 신체적·정신적 손상 그 자체는 자신이 안고 있는 다른 문제들에 비해 사소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 P96
장애운동가와 연구자들은 장애는 고통과 다름없다는 등식에 맞서 수십 년을 싸워왔다. 많은 이들이 장애를 둘러싼 고통 대부분이 비장애중심주의, 이를테면 장애인들이 마주하는 차별과 소외 같은 것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 P100
동물들은 너무나 자주 목소리 없이 고통받는 존재로만 표상되었다. 장애에 대한 비판적 견지에서 이 동물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이 동물들을 고통받는 존재 그이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은 이 동물들이 지닌 취약성과 차이가 새로운 앎과 삶의 길을 구축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 P100
이 장의 제목은 〈동물 불구들>이다. 동물을 불구라고 부르는 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투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런 투사는 비인간 동물들을 비장애중심주의에 똑같이 억압받아온 주체로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동물들을 불구라고 부르는 행위는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사고하고, 느끼는지 그리고 무엇이 몸을 가치 있는 것, 착취할 수 있는 것, 유용한 것 혹은 쓰고 버릴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지에 관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는 소나 닭의 경험에 관한 우리의 일반화된 생각을 뒤흔드는 일이다. 또한 이는 라이플 총의 가늠쇠로 본 절뚝이는 여우가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동물불구라는 말은 삶과 삶의 다양성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보도록 한다. - P101
결국 장애동물만 불구로 불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동물들-우리 인간이 장애를 가졌다고 하는 동물이든 그렇지 않은 동물이든은 장애인들이 당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이유로 폄하되고 학대당한다. 그들은 인간의 삶을 유일무이하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든다고 간주되는 여러 능력과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능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달리 말해 그들은 비장애중심주의 아래 억압받아왔다. - P101
대중의 강력한 항의는 동물을 이용하는 연구가 내포하는 윤리 문제를 둘러싼 깊은 혼란을 보여주었다. 파우츠는 이렇게썼다. "LEMSIP의 연구자들은 그들의 새로운 연구 대상이 ‘내보내줘GO OUT‘ ‘담배 줘SMOKE‘ ‘안아줘 HUG‘ 같은 의사를 수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침팬지의 혈액이었다. 반면 침팬지에 대한 끔찍한 취급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수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는 듯하다. 마치 그 능력이 그들을 더욱 동정받을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LEMSIP의 앨리와 님에 대한 대중의 항의는 침팬지 자체보다는 "인간적" 특징을 지닌 존재를 감금하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사람들은 언어나 이성 같은 인간적 능력을 우리에서 꺼내기 위해 집회를 연 것이다. 앨리와 님은 단지 그런 능력에 수반된 존재에 불과했다. - P108
세기가 바뀔 무렵, 구어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관념, 즉 수어가 덜 세련된 언어라는 생각은 인종, 장애, 동물성의 범주들이 서로 얽혀 있으며 상호구성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어에서 몸짓이나 표현은 인종화된다. 원시적이고, 뒤떨어져 있고, 동물적이라고 간주되는 유색인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어는 흔히 동물, 특히 원숭이나 유인원을 가리키는 은유로 묘사되었다. 수어를 사용할 때의 몸짓이나 표정은 "원숭이 같"았고,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유인원 같은 몸짓이나 원숭이처럼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는다고 놀림받았다. 수어와 구어 모두 하지 못하는 농인들 역시 동물화되었다. 이들은 언어가 없다는 이유로 원시 상태나 단순한 동물적 삶을 산다고 간주되었다. 몸짓 언어를 언어라기보다, 개의 꼬리 흔들기 같은 동물의 표현행동이라고 부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P111
동물 옹호가들중에는 동물과 장애인의 능력과 무능력을 혼동하는 사람들도있다. 이는 서로 완전히 다른 집단들을 똑같이 취급하고 이미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영속적으로 비인간화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나는 비인간 동물과 장애인이 특유의 유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이러한 관점과 반대로 동물과 장애인 모두의 가치를 폄하하는 우리의 시스템 자체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특히 언어와 인지적 능력에 관한 비장애중심주의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시스템 말이다. - P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