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고, 또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단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오늘 《이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단번에 지금 당장 그렇게 하지 않고는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어떻게 끝낼 것인가? 무슨 수로 끝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지니고 있지 않았을뿐더러, 또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상념을 쫓아 버렸다. 상념이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다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모든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다. <어떻게든 상관없어.> 그는 필사적이고 질긴 자기 확신과 결단성을 가지고 이런 말을 되뇌고 있었다. - P225

「저는 좋아합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말을 이었지만, 그 태도는 전혀 거리의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저는 춥고 어둡고 축축한 가을날 저녁에, 반드시 축축한 날이어야 합니다, 모든 행인들이 창백하고 병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런 날 저녁이어야 합니다, 그런 날에 악사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아니면 바람 한 점없이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더 좋지요. 아시겠습니까? 눈발 사이로 가스등이 빛나니까요……」 - P226

〈그게 어디였더라.〉 라스꼴리니꼬프는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읽었더라? 사형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던가, 생각했다던가. 겨우 자기 두발을 디딜 수 있는 높은 절벽 위의 좁은 장소에서 심연, 대양, 영원한 암흑, 영원한 고독과 영원한 폭풍에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평생, 1천년 동안, 아니 영원히 1아르신밖에안 되는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지금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했다지!" 살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든 살 수 있기만 하다면……! 그만한 진실이 또 어디 있겠나! 그래, 이건 정말 대단한 진실이 아닌가! 인간은 비열하다………! 또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를 비열하다고 하는 놈도 비열하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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