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은 갑자기 공허해졌다. 괴롭고도 끝없는 고독감과 음울한 소외감이 갑자기 뚜렷하게 그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예전에 미처 몰랐고,또 이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무언가 낯설고 새롭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 변화를 그는 머리로 이해했다기보다는 감각이 지닐 수 있는 모든 힘으로 뚜렷하게 느낀 것이다. - P153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는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새롭고 전혀 뜻하지 않았던, 너무나 단순한 질문이 순식간에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경악하게 했던 것이다.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그냥 저지른 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일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거라면, 너는 왜 지금까지도 지갑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네가 무엇을 훔쳤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느냐? 그러면서 왜 넌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이런 비열하고 추악하고 저급한 짓을 의도적으로 저질렀느냐? 그런데 너는 조금 전에 그 지갑을 물에 던지려고 했다. 네가 아직까지 열어 보지도 않은 물건들과 함께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 P162

<나는 나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한 나머지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제도, 그제도 나는 계속해서나 자신을 괴롭혔다………. 건강을 회복하면…… 나를 학대하지 않게 될 거야…………. 그런데 건강이 회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오, 세상에!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지겹기만하다………!>


한 가지 극복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마주치는 모든 것,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끊임없는, 거의 생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혐오감이었다. 그것은 집요하고 사악한, 증오에 가득 찬 혐오감이었다. 그는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들의 얼굴, 발걸음, 행동거지, 모든 것이 그랬다. 만일 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면,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에게 침을 뱉든지, 그를 물어뜯어 버렸을 것이다………. - P163

라스꼴리니꼬프는 남의 도움 없이 소파에서 일어나 앉아, 손을 자유롭게 움직여서 찻잔이나 숟가락을 쥘 수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걸을 수도 있을 만큼의 힘이 생겼음을 느꼈지만, 잠자코 있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야수와도 같은 교활한 본능으로 그는 어느 시기까지는 자기의 힘을 숨기고, 만일 필요하다면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늉까지도 하면서,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끝까지 들어 보고 모조리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혐오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 P179

「아니요, 그건 다 아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지금까지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듣고, 이웃을 사랑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뾰뜨르 뻬뜨로비치는 어쩌면 지나치게 너무 서둘렀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저는 웃옷을 반으로 잘라서 이웃과 나눠 가졌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둘 다 반은 벗은 몸이 되었을 겁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는 러시아 속담도 있지요. 그런데 과학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기초로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자기 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있고, 또 웃옷도 온전한 채로 남게 되지요. 경제적인 진리는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은 개인 사업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즉 입을 만한 웃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공의 사업도 자리를 잘 잡아 가게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유일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김으로써 저는 그런 방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되고, 또 가까운 사람도 반으로 조각난 웃옷보다는 나은 것을 많이 얻게 될 겁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사적이고 개별적인 자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공에 기인한 것이지요. 이 생각은 단순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열광하기 쉬운 성격과 몽상적인 기질 때문에 눈이 멀어 너무 오랫동안 우리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겁니다. 이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약간의 감식안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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