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그들이 스스로의 내적 편견을 인식하게끔 하는(나아가 편견을 버리도록 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누군가의 고통을 선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뿐일까? 나의 인간성은 어째서 내가 어떻게 희생되고 침해당했는지를 고백할 때만 가시화되고 관심을 받는 걸까? - P77

"너는 남자애가 참 착하구나. 어머니께서 뿌듯하시겠어."
이런 칭찬은 ‘좋은 남자’라는 개념에 관한 또 한 가지 문제를 드러낸다. 남자들에게는 그 문턱이 너무나 낮다는 것이다. 설거지처럼 가장 기본적인 가사노동을 거드는 것만으로도 남자들은 매일같이 화제가 된다.
내가 앞서 털어놓은 경험들이 예삿일이 되고, 종국에는 너무나 자주 인지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낮은 문턱 때문이다. 성차별적인 말들, 위협, 성추행, 사생활 침해, 공격성 등은 남자들의 ‘일반적’ 특성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일반적’이라는 말은 위험스럽게도 ‘허용 가능하다‘라는 말과 호환될 수 있다. "남자애들이 다 그렇지" 결국에는 그런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남성성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예외를 갈망할 게 아니라 지금의 기준선 자체에 맞서야 한다. 아무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여자를 위해 출입문을 잡아좋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페미니스트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 인종주의,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를 비롯한 온갖 억압을 경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아무리 ‘전형적인 남자‘의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해도 ‘좋은 남자’라는 신화를 영속화하고 예찬하는 한, 결과적으로 지금의 기준 선을 눈감아주는 데 공모하게 될 뿐이다. - P86

여성과 여성성을 향한 경멸은 암암리에 행해지며 여성을 사랑하는 것과 무관 하게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친다. 경멸은 (여성학 과정에 쏟아지는 조롱을 비롯해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내 아빠가 그랬듯 ‘예민하다‘는 말을 경멸조로, 통제의 기제로 사용하는 건 여성혐오의 일종이다. 엄마의 재킷 을 입었다는 이유로 내게 침을 뱉은 행동은 여성혐오였다. 호모 주제에 감히 눈을 마주쳤다며 나를 공격하려 했던 것도 여성혐오였다. 내 걸음걸이를 교정하려는 바람 또한 여성혐오였다. 마른 몸 때문에 느낀 수치심과 근육을 키우라는 게이 문화의 압력도 여성혐오였다. 동의 없이도 타인의 신체를 만질 수 있다고 전제하는 남자들의 가정도, 내가 설정하는 경계를 묵살하는 행위도 모두 여성혐오였다. 젊은 여성 승객에 대한 택시기사의 과잉 성애화도 여성혐오였다. 버스 정류장과 프라이드 축제에서 내가 받은 부당한 공격도 여성혐오였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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