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말을 하면 많은 남자가, 심지어는 여자들도 겁을 먹고 화를 낸다. 이 야만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이 진실을 말하려면 전복적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짓눌리고 억눌린 당신은 탈주하고 전복한다. 우리는 화산 같은 존재다. 우리 여자들이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서, 인간의 진실로서 말하는 순간, 모든 지형도가 뒤바뀔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산맥들이 생겨날 것이다.
-어슐러 K. 르 귄 - P11

나는 트랜지션tansition을 시작한 뒤에야 내가 일생 동안 영위해온 독립독행이 대체로 남성 특권에 따른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젊은 여성으로서의 삶은 나 자신을 재교육하도록 명령한다.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행위를 나약하거나 한심한 일이 아니라 필연처럼 여기도록 길들여지는 것이다. - P19

공연이 있을 때는 반드시 클렌징 티슈를 챙긴다. 비교적 안전한 장소인 공연장을 떠나기 전에 서둘러 ‘얼굴을 지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마에 붙은 빈디bindi 를 떼어내 바람에 날려 보내는 밤이면 어느 때보다 커다란 슬픔을 느낀다. 마치 내게서 떨어져 나온 조각 하 나와 상징적 이별을 하는 것 같다. - P21

내가 남자들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일종의 연료다. 이 연료는 생존 본능으로서 내 몸을 보호하지만, 남용으로 이어져 내 몸을 좀먹기도 한다.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뒤 나는 무수한 급성 통증과 반복사용 긴장성 손상 증후군repetitive strain injuries에 시달렸다. 하지만 어떤 의사도 이 증상을 설명하거나 치료하지 못했다. 그들은 의심 어린 눈길로 물을 뿐이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어디서 넘어진 것도 아니고? 그럴 때면 이렇게 답하고만 싶어진다. "제겐 사는 게 공포인걸요." - P22

심지어 오늘날 에도 (아무리 친구나 동료일지라도) 다른 남자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신뢰할 만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말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 허용되는지조차 의문이다). 크루징cuising처럼 보이는 행동이 사실은 경멸일 수도 있다. - P37

프라이드 축제가 한창인 곳에서 나는 퀴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네가 자행한 언어폭력을 목격하고 나를 비호한다. 그러나 프라이드 축제가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그 자리에 다른 퀴어들이 없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불과 일 분이 채 되지 않는 다툼이었지만, 너는 순식간에 나를 학습된 공포에 빠뜨린다. 이런 두려움의 감정이야말로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처럼 느껴진다. 트랜스들에게는 경계심을 풀고 숨을 돌리는 호사가 허락되지 않는다. 트랜스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트랜스 행진‘으로부터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조차 횡단 보도에서 마주친 생면부지의 타인을 함부로 만지는 변태로 취급당한다. - P56

너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짝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너는 친구로 지내자는 내 제안에도 마침 새로운 친구를 찾고 있었다며 선뜻 태도를 바꿔주었다. 우리의 친밀감이 커져가도 너는 결코 선을 넘는 법이 없다. 너는 내게 은근히 어필하지도,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이 달라지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지도 않 는다. 너와의 우정은 어른이 된 내 삶에 최초라는 의미로 새겨진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의견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대받을 수도 있다고 느끼게 해준 남자는 네가 처음이니까. - P60

타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공포를 유발한다. ‘사랑에 빠지다fall이‘라는 표현에서 엿볼 수 있듯 낭만적 사랑에는 언제나 일종의 낙하fall가 우선한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고통이나 통제 불능에 빠뜨릴 가능성을 수반한다. 지금껏 나는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위험에도 늘 기꺼이 사랑에 뛰어들었다. 내가 기존에 알고 있거나 느껴왔던 모습과 다를 때에도 마찬 가지였다. 친구들이 내 선택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조차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사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 P67

내가 남자들을 두려워하는 건 한 남자와의 이례적인 만남 때문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일상에서 매일같이 손상을 경험한다. 미처 말하지 못한 경험들도 존재하고, 앞으로 직면할 경험들도 엄연히 남아 있다.
내가 남자들을 두려워하는 건 이 같은 경험들로 인해 누적된 손상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일들은 전혀 예외적이지 않다. 나는 내 이야기가 얼마나 흔해빠진 것일지 두렵다. 수많은 사람이 이보다 더 잔인한 남자들의 폭력을 견뎌왔다. 나는 또한 이 이야기들이 유발할 가장 보편적인 반응이 연민 일까 두렵다.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건 사람들의 관심을 자아내고 변화를 일으키려면 연민을 유도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