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은 닿을 수 없지만 어딘가 먼 곳에 존재하는 빛, 하지만 언젠가 죽으면 볼 수 있는 빛에 대해 노래했다. 지금은 유리창이나 찌그러진 거울을 통해서만 보지만, 언젠가는 정면으로 그 빛과 마주할 것이다. 그러면 그 빛은 우리를 삼킬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원한 빛은 우리의 어머니이며, 우리는 그 빛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그 빛의 조각을 몸속에 지니고 있다. 심지어 왕발조차도.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기뻐해야 마땅하다. 노래를 부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지만, 실제로 나는 영원한 빛이 모두에게 제각기 할당된다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그 어떤 신도, 그리고 그 어떤 천상의 회계사도 이러한 분배의 업무를 짊어지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나의 존재, 특히 전지전능한 어떤 존재가 홀로 모든 고통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에는 어떤 방어적인 메커니즘을 미리 갖추지 않는 한, 그 존재는 고통의 짐으로 인해 무너져 버릴 것이다. 오직 기계만이 세상의모든 고통을 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명료하고 효과적이며 공정한 기계만이. 하지만 모든 것이 기계적으로 작동된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기도 따위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 P60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지표면이 다른 행성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는 게 사실일까? 또한 인간이 원죄를 저지르고 타락한 이후, 모든 빛이 산산이 부서지고 흩어져 버렸으며, 그렇게 우리 모두가 거대한 공허 속으로 내던져졌다는 것도 사실일까?
그렇다, 사실이다. 그러므로 티브이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매일 상기시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쉽게 망각할 테니까.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이고, 신이 우리를 용서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다르다. 결국 우리가 저지른 행위는 미세하게 진동하는 광자(光子) 에너지로 바뀌어 마치 영화에서처럼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갈 것이며, 다른 행성들은 세상의 종말까지 그것을 지켜볼 것이다. - P66

밤이 되면, 나는 금성을 관찰하면서 아름다운 처녀자리의 이행과정을 상세히 추적해 본다. 나는 이 처녀자리가 ‘이브닝 스타‘ 처럼, 아니면 마술처럼 난데없이 나타났다가 태양 뒤편으로 저무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영원한 빛의 불꽃, 땅거미가 질 무렵이야말로 가장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시점이다. 이 무렵에는 단순한 차이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나는 영원한 땅거미 속에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 P69

고원이 빚어내는 흑백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슬픔이 세상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단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슬픔은 모든 것의 본질 가운데에 있으며, 다섯 번째 원소이자 정수였다. - P73

그녀를 잘 알지 못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녀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잘 알기에 책장을 펼쳐보기가 두려웠다. 만약 그 책 속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묘사된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인식하고 있다면? 어쩌면 그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 그러니까 펜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그녀와 같은 인물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들은 뭔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눈(目)이며,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문장으로 바꿔 버리는 존재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현실을 끄집어내어 거기서 가장 본질적인 것, 그러니까 말이나 글로는 표현 불가능한 것들을 삭제해 버린다. - P78

출생에 질서가 있는데 죽음이라고 질서가 없겠는가? - P86

세상의 미세한 조각들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는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연결망의 우주에 의해 나머지 다른 조각들과 견고하게 묶여 있다. 그렇게 세상은 작동한다. - P87

나는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쓰인 세상의 모든 시가 내게는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모호하게 느껴졌다. 나는 왜 이런 식의 폭로가 좀 더 인간적인 방식, 그러니까 산문으로 기록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P104

"어떤 악마가 이 혐오스러운 공허함을, 이 영혼을 오싹하게 만드는 허공을 만들었을까?"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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