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고른 책을 한 손에 든 채 남은 서가를 마저 둘러보고 나면, 어느새 방금 만난 책과 한 가족이 된 기분이 듭니다.
아직 계산하기 전이지만 오늘 내가 만난 문장과 함께 책방을 거닐면, 책방에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기분이 됩니다. 마트에서 남의 카트 안을 나도 모르게 보게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들고 다니는 책의 표지가 보일 때면 아주 잠깐 그 사람의 세계가 보입니다. 아주 좁은 상상이 생겼다 없어지는 공간이 바로 책방입니다. 책을 계산하면서 카드가 읽히는 아주 짧은 기다림의 시간. 직원분이 제가 산책을 두 손에 들고 가만히 쳐다봤습니다. 책 제목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싫지 않았습니다. - P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