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 P7
동물을 소중히 다루는 게 보편화되어 ‘동물처럼 다룬다‘는 말이 지금처럼 폭력을 상기시키는 대신 ‘배려하면서 친절하게 대한다‘는 뜻으로 바뀌면 우리의 윤리 체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말의 뜻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 - P11
어느 인류학자는 서양인은 목적 지향적이고 동양인은 관계 지향적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현대 한국인은 ‘이해관계지향적‘이라고. 잘해줘봤자 즉각적인 이득이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남은 무성의하게 대해도 되는 분위기이다.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인심이 좋았든 이것이 현재 우리의 자화상이며, 우리 사회가 이민자, 난민, 성소수자 등 소수자나 약자를 바라보는 평균적인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형편이 이러니 동물 ‘따위‘야 남 중에서도 가장 뒷전으로 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타자나 소수자 문제에 관해 제법 진보적인 견해를 가졌다는 이들도 동물 문제에는 무심하다. 동물은 심지어 남으로 치지도 않는다. 물건이나 고기일뿐이다. 가장 타자화된 타자, 남 중의 남. 그래서인지 나는 수많은 타자 가운데서도 동물에 가장 마음이 간다. - P13
비건의 핵심은 거부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 P16
도살업체들은 하나같이 ‘인도적 도살‘을 한다고 주장한다. 꿈같은 얘기다. 단시간내에 최소비용으로 최대 이윤을 남기는 게 목적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동물 한 마리를 죽이는 시간은 짧을수록, 비용은 적을수록 좋기 마련이다. 전기충격이나 순간적인 고열 또는 가스로 죽이는 경우도 잔인하긴 매한가지이다. 살상 공정 이후에도 의식이 남아 있는 동물이 컨베이어벨트에 매달려 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일도 허다하다. 생각해보면 인도적인 도살이란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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