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당장에 먹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수많은 번개가 창백한 백합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 다섯 사람의 얼굴에 각각 다른 표정으로 떠오른 느낌을 비웃고 있었다. - P97
죽음이라는 건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면 정말 놀랍고 두려운 일이지. 하지만 잘못 생각하면 제값 이상으로 과대평가하게 돼. 마치 나그네의 불안한 눈에는, 나무 그늘에 돋아난 잡초도 밤의 어둠속에서는 거인처럼 보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지. - P204
저는 치릴로로 변장했을 때,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점점 더 치릴로를 닮아가는 제 자신에게 기쁨을 느꼈을 정도입니다. 감정만이 아니라 말투까지도 치릴로를 그대로 닮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제 자신을 보고 놀라고, 놈들과 가진 대화에 놀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 인간들은 무엇인가? 우리는 실체인가 가짜인가? 종이로 만든 허구, 하느님의 형상을 모방한 피조물, 죽음의 팬터마임 무대에 등장했을뿐 실재하지 않는 존재, 적의를 가진 마술사가 빨대로 불어대는 비눗방울? - P229
저는 그동안 줄곧 무슨 꿈을 꾸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지금은 또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마치 무대의 막을 내리는 끈을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고,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행복감이 넘쳐흐르는 느낌입니다. 초인간적인 알파벳의 신비로운 작용 속에서, 제가 굴러 떨어진 어둠의 ‘오메가‘가 영원한 빛의 ‘알파‘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 P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