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처벌하는 것은 그러므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잘못된 과오를 시정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쾌감인 동시에 시련이기도 하다. 신자가 영성체를 원하듯 너희가 순교를 원한다면, 나는 집행자로서 너희의 순교를 도와줄 작정이다. 나는 심판이요, 형벌이요, 칼집에서 빼낸 칼이요, 하느님의 뜻을 집행하는 망나니이기도 하다. - P43
어둠은 맹목의 세계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는 눈먼 손과 손이 서로 마주잡고, 기억을 더듬으며 빛의 자취 속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죽음은 어둠도 아니고 빛도 아닌, 그저 폐기된 기억일 뿐이며, 전면적인 파괴와 부재이고, 재조차 남지 않는 화장이다. 죽음 속에서는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에 존재했던 흔적조차 사라지고 마는 것 같다. - 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