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고 살을 뺀다는 것이 외모에 대한 편견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편견과 맞서 싸우는 것인지 자주 헷갈린다. 남의 눈에 들려고 하는 건지 나에게 나를 잘 보이기 위한 건지도 잘 모르겠는 때가 많다.
하긴 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도 어차피 타인의 눈을 거치기 마련이다. ‘내 안에 너 있다‘는 대사처럼 타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내 안에 존재한다. 나와 타자의 경계는 명확히 그을 수 없다.
지름신 때문에 행거에 걸린 옷이 늘어날 때마다 나는 누구의 어떤 눈으로 나를 보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자기답다‘라고 한다. 지름신에 들려 산 내 옷, 저 옷들은 나다운 것일까? - P26
다시 운동을 시작한 날, 막 입학한 새내기의 설렘으로 체육관에 들어섰다.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 전구를 갖고 있던 나이스가 활짝 웃었다.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고 했다. 당분간은 살살 걷기만 하라고도 했다. 나는 트레드밀을 시속 3.5킬로미터로 걷는 달팽이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느려도 나는 움직이고 있다. 다시 움직인다는 것이 즐겁기만 했다. 분홍 신을 신고 무대에 오른 발레리나처럼, 운동화를 신고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몸에 새긴다! 이 말이 참 좋다.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