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써가 처음으로 분장을 했을 때 그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도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거울 속에서 호기심에 차 자신을 되응시하는 낯선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그는 아찔한 자유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은 그가 대령과 지내는 내내 결코 증발해 날아가버리는 일은 없었다. 단원들이 서로 헤어진 최후의 순간까지, 그리고 월씨가 지금껏 알아온 그자신의 자아가 스스로에게서 분리된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가면 뒤에서 위장한 채 자유를 경험했다. 그는 존재와 유희를 벌일 자유를, 그리고 정말로 우리 존재에 필수적이면서 익살극 한가운데 있는, 언어와 유희를 벌일 자유를 경험한 것이다. - P205
톱밥이 깔린 써커스장, 이 작고 동그란 터는 얼마나 값싸고 편리한 표현설비인가! 눈알처럼 둥글고 가운데에는 계속 소용돌이가 인다. 그러나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살짝 문질러주기만 하면, 그 즉시 써커스장은 그 오래된 은유적 의미에서의, 제 꼬리를 문 둥근 뱀, 완전한 원으로 돌아가는 바퀴로 변한다. 끝이 시작이기도 한 바퀴, 운명의 바퀴, 우리의 진흙 형상이 빚어지는 도예가의 바퀴, 우리 모두가 부서지는 삶의 바퀴로 변하는 것이다. 오, 경이롭도다! 오, 슬프도다! - P212
광대골목이란 모든 광대들의 숙소를 일컫는 포괄적 명칭으로, 쌍뜨뻬쩨르부르그에서 임시 거처는 마치 이슬처럼 벽에서 뚝뚝 습기가 떨어지는 썩은 목조가옥이었는데, 마치 감옥이나 정신병원 같은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중 광대들은 폐쇄된 기관의 수감자 중에서도 수족이 잘린 환자들 같은 침묵을, 즉 자기 스스로 결정한 끔찍한 존재자의 인내심을 끌어냈다. 저녁시간이면 흰 얼굴들이 식탁 위로 둥글게 모였고, 그들은 할머니의 생선수프에서 피어오르는 시큼한 김에 흠뻑 젖었고, 데스마스크처럼 겉보기에는 생명이 없는 존재들만 같았다. 마치 본질적 의미에서 광대들 자신은 식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광대의 복제품 뒤엔 그 어떤 사람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 P229
"광대짓의 묘미란, 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 있지."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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