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해가 죽던 날 거장의 클래식 4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옌롄커 작가의 『해가 죽던 날』을 처음 알게 된 건 서울국제작가축제였다. 당시 초청받아 올 작가 명단에 작가의 이름이 있었고, 그전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등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작가와의 만남에 꽤 기대감이 컸었다. 역시 그의 글만큼 현장 반응도 좋았고, ‘다음 작품은 뭘 읽어볼까’ 생각하던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읽고는 싶지만 두께가 상당해 책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는데, 문학주간을 통해 이 책을 다시 만났다. 2025 문학나눔으로. 이건 운명!

『해가 죽던 날』은 작열 후 사그라드는 태양처럼 얼굴 형상이 무너져가는 그림의 분홍색 겉표지에 먼저 시선이 끌렸다. 제목과 목차를 봤을 때도 남다르다 생각했다. 하룻밤을 시간 단위로 나눠 장을 구성했고, 추상적이면서 은유적인 장 제목이 읽기 전부터 흥미를 유발했다. 읽으면서는 각 상황에 처해있는 무력한 인간의 심리묘사와 그의 어쩔 수 없음이 가깝게 다가왔다. 처음엔 500 페이지 이상의 이 책을 끊어 읽지 않고 완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마을 전체가 몽유에 빠져 드는 과정과 그 몽유를 통해 현재는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공상과 과거에 대한 집착이 빚어내는 아수라장 같은 현실이, 지체 없이 다음 장을 넘기게 만들었다.

읽기 시작한 초반엔 매장이 금지된 시대에 마을 내 유일한 화장장을 운영하는 녠녠의 외삼촌과 망자를 위한 화환과 종이꽃을 만들어 파는 녠녠 가족의 생활을 담은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 사이사이 동명의 작가가 소설 속 인물로 출연하며 집중력을 더 상승시켰다. 그 이야기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했는데, 결국 400여 페이지를 넘어서며 반전이 일어났다. ‘태평천국’이란 단어가 등장하며 소설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바뀌었다. 기승전결에서 전결이 확실하게 클라이막스로 작용하며 무법지대의 모습을 보여줬고, 해가 멈춰 버린 그날의 상황을 종료하고자 녠녠의 아버지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장면으로 이어지기까지, 텍스트가 그려낸 아비규환의 상황이 눈앞에 그대로 재현됐다.

숨고를 새 없이 몰아치던 상황이 정리되고 새로운 상황으로 마무리된 소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책은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독으론 알아채지 못한 은유적인 장치들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학작품을 읽을때마다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에게 미지의 즐거움을 주는 게 문학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기대에 충분히 기여한 책이다. 단지, 번역에 사용된 한자어가 조금 더 의역이나 윤색되어 작품 속에 잘 녹아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조금의 아쉬움은 남는다.

#2025문학나눔 #문학나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당장 읽을 책이 아니라면 때맞춰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이 책은 미리받아두고 그날이 될 때까지 묵혀 뒀다. 내가 생각한 그날은 곧 찾아왔고, 작은 캐리어와 배낭 여행 중 언제든 꺼낼 수 있게 배낭에 이 책을 넣었다.

실용서가 아님에도 여행길에 360페이지가 넘는 책을 들고 간다는 건 어느 정도 결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여행이란 본래 인생만사를 능동적으로 만나는 일이고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연작을 통해 인연을 맺은 저자의 책이니, 그 역시 동반책으로는 손색이 없단 생각도 했다.제목도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아닌가.

그렇게 가방안 가장 가까운 곳에 넣어두었지만 여행 초반부엔 꺼낼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다 하루는 꼭 백 페이지를 읽고 자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렇게 읽기 시작한 게 3일 만에 끝을 봤다.

책을 읽는 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한 건 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묵직한 일상사였다. 워낙 유명한 저자라 당연히 아는 것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우리 문화사를 거침없이 누빈 인물들과 생각보다 더 많이 얽혀있음에 감탄스러웠다. 마치, 이 저자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 주변의 모든 사람이 존재하고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았다. 현재의 그를 만든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 같달까.

우연히라도 만나면 “이 생을 참 열심히 잘 사셨네요”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 모든 문장에선 그 자신, 주변 사람, 문화재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 난다. 그런 소소한 일상과 주변인에 대한 “아낌”이 전해져 , 책을 읽는 내내 따뜻했고 어느 순간엔 화자가 맞은 편에 앉아 이야기를 해주는 듯 책 장이 술술 넘어갔다.

인상 깊은 대목도 많았다. 그중이서도 11시간이나 지났음에도 “나의 이야기에서 김정희가 아직 죽지 않았다 ”라는 대목, 문화재 청장의 관할 영역에 관한 이야기는 타국에서 고국의 안위를 걱정하던 때에 읽었던 부분이라, 웃겼지만 마음은 슬펐다. 고국에서 벌어진 일에 화도 많이 났지만, 그래도 덕분에 잠시 웃었다.

독자로서 바라건대, 계획한 시리즈가 끝나더라도 이렇게 종종 인생 만사 답사기를 들려 주었으면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동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을 함께 톺아보는 일이 점점 즐거워 지는 이유에서다. 부디 11년 후에도 , 그 이후에도 저자의 이야기에서 김정희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She, 두 번째 시작 노트
김진수 지음 / 시와길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에는 사람이 담긴다아무리 치장하고 덧씌워도 그 사람이 보인다.

시를 통해 나에게 읽힌 시인은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참 바른 사람이다. 

순간순간 질풍노도에 잠식당하는 그가 보이다가도, 언제나처럼 제자리로 돌아와 시를 쓰며 툭툭 털어낸다.  

  

시집 <She>는 그의 곁을 채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시집을 통해 익숙해진 그만의 언어유희가 자그마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사계절의 추억과 밤과 낮의 기억과 가족과 연인, 나와 너의 이야기가 펼쳐진 공간엔 '추억' '사랑' '미안함' '고마움' 안타까움' '기쁨' '위안'과 같은 언어가 무형으로 다가와 나의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는, 다른 사람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사람, 나를 발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사람. 그는 누구를 위해 이 시집을 썼을까? 자신의 어떤 마음을 꺼내 보이고 싶었던 걸까?.여러 의문 속에 분명하게 와닿는건, 이 한 가지. 이 시는 그가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아온 사람인지를 알게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시를 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사랑한다, 말하기까지
유주연 / 플루에레 / 2021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유행가 가사엔 사랑한다는 말이 넘쳐난다. 누군가의 글을 통해 자주 되내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겐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이다, 사랑이란 말은.

흔하디흔하고 닳고도 닳은 그 말을 나는 얼마나 자주, 정성스럽게 나 자신에게 말하고 들려주고 있을까.

 

처음 표지와 제목을 봤을 땐 말랑말랑한 사랑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스스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로 가득 차있다. 우물 속에 담겨있던 사나이를 미워하며 돌아섰지만 그 사나이가 가엾고 그리워 다시 찾아온 윤동주의 시를 닮은 에세이다. ‘나라는 존재 이외엔 가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너무 당연한 그 말이 위로로, 격려로 다가와 나를 위한 예찬으로 남는다.

 

그의 말처럼, 나도 세상이 주는 사랑과 선물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오늘은 나를 꼭 안아주고 예쁜 말들을 해줘야겠다.

수고했어, 고마워, 사랑해, 오늘도 참, 예쁘다.”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바람처럼 네가 그리워
심인경 / 사이의 섬 / 2021년 6월
평점 :
판매중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전생前生의 인연이었을 수도 있으니 세상에서의 모든 만남은 소중하다는 의미다. 처음 에세이의 제목을 접했을 땐 분명 절절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작가에게, 그토록 잊지 못하는 인연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궁금했다. ‘사랑의 약속’,‘연인이 메밀꽃의 꽃말이니, 봉평을 배경으로 하는 에세이에서 그런 결말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읽고 나니 너무 많은 의문들이 남았다. 제 자리인 듯 다가온 인연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메밀꽃 같았다. 기대했던 모든 것과 달랐다. 꽉 찬 하루 동안 내내 지켜보며, 함께 겪어내며, 결말을 향해 같이 내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치 앞 길이 끊어져 버린 듯 모든 것이 순식간에 멈춰버렸다


그래서 자꾸 생각난다. 또 자꾸 읽게 된다. 교차 서술된 이효석의메밀꽃 필 무렵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되새겨보기도 하고, 스스로를 ’ 그리고 '그'의 상황에 대입해 이해해 보려고도 한다, 혹시 내가 놓친 암시가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러다 깨달았다. 간절하지만 머무를 수 없는 인연이라 바람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손을 잡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정말 묻고 싶다

글 속에 ‘나가 잡지 않은 , 진정 스스로에게 단 한 번뿐인 인연이 아니었던 건지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는지

지금, 봉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무엇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