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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평점 :
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당장 읽을 책이 아니라면 때맞춰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이 책은 미리받아두고 그날이 될 때까지 묵혀 뒀다. 내가 생각한 그날은 곧 찾아왔고, 작은 캐리어와 배낭 여행 중 언제든 꺼낼 수 있게 배낭에 이 책을 넣었다.
실용서가 아님에도 여행길에 360페이지가 넘는 책을 들고 간다는 건 어느 정도 결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여행이란 본래 인생만사를 능동적으로 만나는 일이고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연작을 통해 인연을 맺은 저자의 책이니, 그 역시 동반책으로는 손색이 없단 생각도 했다.제목도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아닌가.
그렇게 가방안 가장 가까운 곳에 넣어두었지만 여행 초반부엔 꺼낼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다 하루는 꼭 백 페이지를 읽고 자겠다 마음 먹었는데, 그렇게 읽기 시작한 게 3일 만에 끝을 봤다.
책을 읽는 덴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책에서 내가 기대한 건 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묵직한 일상사였다. 워낙 유명한 저자라 당연히 아는 것도 많고 아는 사람도 많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우리 문화사를 거침없이 누빈 인물들과 생각보다 더 많이 얽혀있음에 감탄스러웠다. 마치, 이 저자를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문화재를 널리 알리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 주변의 모든 사람이 존재하고 모든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았다. 현재의 그를 만든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닌 필연 같달까.
우연히라도 만나면 “이 생을 참 열심히 잘 사셨네요”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로 , 모든 문장에선 그 자신, 주변 사람, 문화재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 난다. 그런 소소한 일상과 주변인에 대한 “아낌”이 전해져 , 책을 읽는 내내 따뜻했고 어느 순간엔 화자가 맞은 편에 앉아 이야기를 해주는 듯 책 장이 술술 넘어갔다.
인상 깊은 대목도 많았다. 그중이서도 11시간이나 지났음에도 “나의 이야기에서 김정희가 아직 죽지 않았다 ”라는 대목, 문화재 청장의 관할 영역에 관한 이야기는 타국에서 고국의 안위를 걱정하던 때에 읽었던 부분이라, 웃겼지만 마음은 슬펐다. 고국에서 벌어진 일에 화도 많이 났지만, 그래도 덕분에 잠시 웃었다.
독자로서 바라건대, 계획한 시리즈가 끝나더라도 이렇게 종종 인생 만사 답사기를 들려 주었으면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동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인생을 함께 톺아보는 일이 점점 즐거워 지는 이유에서다. 부디 11년 후에도 , 그 이후에도 저자의 이야기에서 김정희가 죽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