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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실 역은 삼랑진역입니다
오서 지음 / 씨큐브 / 2024년 12월
평점 :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경남 밀양시에 있는 읍인 삼랑진. 그 삼랑진에 있는 작은 간이역인 [삼랑진 역]. 이 소설은 한 마디로 힐링소설이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기차타고 다녀오는 여행 같은 소설] 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꼭 무궁화호를 타야한다. 그리고 반드시 간이역에 내려서 천천히 걷다가 오는 '느린 여행' 같은 소설.
평소 소설은 많이 보는데 이런 류(?)의 소설은 별로 보지 않았었다. 그런데 따뜻하고 포근한 색감의 표지부터가 편안한 기분이 든다. 평화로운 느낌이 들고 뭔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왜 갑자기 몽글몽글한 이런 소설이 끌린걸까. 미스터리가 취향이다보니 소설 속에서조차 나는 늘 자극적이고 사건이 있고 늘 뭔가 해결해야만 했었구나 싶었다. 뭔가 나에게 힐링이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듣기만 해도 좋네요. 아무것도 없는 곳.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사람들도 잘 찾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아무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요." ]
어쨌든 이야기 초반에는 내 뚜렷한 취향 때문에 책을 잘못 선택했나 걱정하면서 읽어 내려갔는데 점점 몰입하다보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읽다가 두 번 울었고, 그래서 나에게 카타르시스와 적지 않은 힐링을 준 소설이다.
슬픈 내용이 나오냐고 묻는다면, "다 제 설움에 우는거야" 라던 생전 울 엄마 말로 대신하고 싶다...ㅎ
하긴 소설 취향이고 뭐고 다 떠나서 일단 표지 일러스트가 너무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라 책에 자연히 눈길이 갔다. (일러스트-제이비)
이 책의 저자는 '오서'. '작가'라는 뜻의 'author'의 발음을 그대로 필명으로 정했다는 소개를 보고, 처음에는 '그냥 작가' 라니.. 필명이 너무 슴슴하다고 생각했다. 나 같으면 더 그럴듯하게 지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책을 읽던 도중 '오서'라는 필명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추측이긴 하다.
[ "저는 회사 다니면서도 사실 성공적인 블로거가 되고 싶었고 제 글이 책이 되서 언젠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었어요." ]
주인공 '미정'의 대사인데 왠지 저자의 자전적인 대사로 느껴졌다. 책을 내고 드디어 고대하던 작가가 된 시점에 '오서'보다 더 좋은 필명은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는 '동네 뒷산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동네 뒷산 같은' 눈은 주인공 '창화'의 처진 눈매에 대한 표현이지만, '삼랑진'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죄다 그렇게 생겼을 것 같다. 착하고 순하고 서로서로 위해주고.. 그렇게 착하게 살기에 '존중받지 못하고 상처받는' 일들이 있을지언정, 그들에겐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다. 언제 돌아가도 두 팔 벌려 반겨주는 '간이역'이 있다. '무궁화호가 언제 지나치든 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삼랑진 역'처럼 말이다.
[ "삼랑진 역이 계속 있어줘서 다행이에요. 요즘은 삼랑진역 같은 간이역이 많이 없어졌거든요."
"... 삼랑진 역이... 사람보다 낫네요." (...)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그 소수의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꿋꿋히 버텨주고 있잖아요." ]
[ '이게 미정이 말했던 '삼랑진 스타일'이 아닐까. 미정이 어린 시절 싫어했던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동네. 정작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삼랑진 스타일'이 아닐까. 서로를 너무 모르는 지금의 우리에게.' ]
좁은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란 '미정'은 서로를 너무 잘 알다못해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꿰고 있는 동네를 싫어했다. 나는 시골에서 자라진 않았는데도 '미정'처럼 늘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의심이 많은 편이라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래선지 모르는 사람이 보이는 관심은 겁이 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파트에 살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냈고, 누가 관심을 조금 보이려하면 경계하게 되고 간섭으로 받아들여졌다. 설령 그게 나를 위한 도움이자 관심이라 해도 '요즘같은 세상에..' 하며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문 꼭꼭 걸어잠그고, 나 혼자만 행복한 것. 나를 비롯해 수많은 각각의 행복한 1인들. 이게 과연 진정으로 행복한 걸까 하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서로를 너무 모르는 지금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 그리고 그걸 깨달은 창화와 미정이 너무 부럽게만 느껴졌다.
삼랑진에서 카페를 열게 된 '창화'는 동네에서 곤경에 빠진 할머니를 돕게 된다. 그 계기로 마을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카페는 점차 마을의 사랑방처럼 되어간다. 창화는 그제서야 카페도, 창화 자신도, 본인이 원하던 진정한 '삼랑진 역'이 되어감을 느낀다.
[ "삼랑진이라는 동네가 있고, 그 동네에 이런 좋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야 삼랑진 역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이 카페는, 이제야 삼랑진 역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더 많은 무궁화호가 찾아오겠죠?" ]
이 책을 읽다보니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삼랑진 역'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지도 앱에서 삼랑진역을 검색해서 주변 사진을 둘러봤더니 역 근처에 카페도 있고, 빵집, 도서관.. 간이역이지만 정말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삼랑진역 오막살이] 카페가 정말로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 성이 '밀양 박씨'인데 나는 밀양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이 책 덕분에, 그리고 '미정'의 안내 덕에 삼랑진과 밀양이라는 곳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밀양에는 밀양호라는 호수가 있고, 용암정이라는 정자에서 바라보는 밀양호가 최고라는 사실.. 땀 흘리는 돌로 유명한 표충사, 그리고 만어사라는 절에는 두드리면 종소리나는 돌이 있다는 것도.
언젠가 무궁화호를 타게 되면 삼랑진 역에 내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주차 정산 게이트가 없는 삼랑진역 주차장을 지나서 [삼랑진역 오막살이]에 들를 것이다. 그때쯤이면 간판 '삼'자의 미음 받침이 떨어져 '사랑진역 오막살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커피머신 뒤에서 책에 몰두하던 창화가 허둥지둥 일어나 어서오세요- 하고 외칠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는 미정과, 카페 둘째 사장이 되어있을 상욱도 만나보고 싶다.
저.. 해질녘 커피 한 잔 주세요.
정말 기차 여행 가고싶게 만드는 힐링소설이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휴식이 필요한 분들이라면 이 소설을 펴고 삼랑진역 힐링 기차 여행 한번 다녀오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