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처럼 단단하게
옌롄커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에는 자신이 없는지라, 중국 문학은 거의 접해보지 않았던 나에게
인상적인 붉은 표지와 파-란 띠지의'물처럼 단단하게'는 내게 눈길을 끌었다.
두툼한 두께지만 읽기에 편안할만큼 큼지막한 글씨 덕에 부담감도 조금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당황스러웠다.
'혁명 가곡'이 울려퍼지는 순간 머리 끝까지 흥분해 서로를 탐닉하는 두 남녀라니,
샤홍메이와 가오아이쥔의 그 더러운 불륜을, 정욕을
그 잔혹한 혁명이란 같잖은 포장을 씌워 합리화시키는 것 뿐 아니라
가오아이쥔의 아내인 구이즈가 자신의 아버지를 능욕시키고 가정을 조금도 돌보지 않는
남편을 견디다 못 해 마오쩌둥 주석님의 초상화를 갈갈이 찢고 목을 매 죽자,
자신의 아내가 목을 매 죽은 상황에서도 전혀 슬퍼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그녀를 반동분자로 몰아버리는
인간미라고는 정욕밖에 없는 가오아이쥔이라는 주인공에게
애정이 갈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5page.
사월의 새벽노을처럼 붉은빛이 찬란하게 흘러넘치고
극도의 현기증을 동반한 쾌락과 행복이
저희가 부딪히는 몸 사이에서 날아가 머리 위
빽빽한 회화나무 잎에 걸려서는 겹겹이 포개진
타원형 회화나무 잎을 하나한 암홍색으로 물들였습니다.
그녀가 별을 원하고 달을 원하는 게 보였습니다.
깊은 산속 태양의 외침이 그녀 영혼에서 빠져나와
하얗고 빨갛게 작열하며 기세등등하게 회화나무 잎의 틈새를 뚫고 지나면서
잎의 가장자리를 태우고, 원래 누렇게 벌레 먹은 곳을 열기로 말아올리거나
바싹하게 태우길 바라는 게 보였습니다.
바싹해진 잎이 잇달아 빙그르르 돌며 나무에서 제 어깨로,
뜨거운 땀으로 흥건한 등으로 떨어지고
그녀의 쾌락에 달떠 빛을 내뿜는 얼굴과 가슴에 걸렸습니다.
사방팔방의 확성기 소리는
그때까지도 물이 흐르듯 파도가 일렁이듯 이어졌습니다.
진주와 마노같이 반짝거리는 가사 구절구절이 도로의 절벽 끝네서 뛰어내리고
황금색과 은백색으로 빛나는 음표가 회화나무 잎 사이에서 운석처럼 환한 꼬리를 끌며
우리 귓가로 미끄러져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처럼 아름다운 문장들은
비록 허위에 쩔어있는 이 두 남녀의 육체적 탐닉일지라도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 반짝반짝하게 느껴졌다.
교성을 내지르는 샤홍메이의 아름다운 육체가
내 눈 앞에서 햇빛에 일부분 비춰졌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듯 했고.
발가락에 대해 찬사를 퍼붓는 부분에서는
나도 샤홍메이의 새하얀 발과 그 붉은 발톱에 매혹당하곤 했으니까.
그리고
이 소설의 후반부로 달려갈 수록,
작가가 이 소설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했다.
성과 혁명을 중첩시켜서 이처럼 황당무게한 소설을 써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 이 황당함으로,
이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얼마나 인간성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폭력이고 살인인지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적색(공산주의)와 황색(성)의 금기를 다 깨뜨려야만,
이 혁명의 본질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가장 금기시 되는 얘기들을 노골적으로 적어낸 작가이므로
그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물처럼 단단하게' 인지도 모른다.
불이 차가워질 수 없듯, 얼음이 부드러울 수 없듯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그 프롤레타리아 문화 대혁명도 절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온전한 혁명일 수 없다.
그저 기묘한 개념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던,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같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에 대한 이해를 깊이 도울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번에 읽었던 마녀 사냥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108page.
합리성을 구성하는 이데올로기가 문제이다.
잘못된 전제 위에서 구성되는 합리성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