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반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3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작은 이기심들이 모여 만들어진 커다란 파동이 한 아이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만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일상에서의 사소한 실수들, 하찮은 악의들. 이 끔찍한 연쇄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무런 죄도 없는 순수한 아이의 죽음으로 귀결된다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아이의 죽음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 모두가 잘못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다.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직접적인 이유가 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해왔던 일련의 행동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회피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어떻게든 책임 추궁을 피하려고만 한다. 읽으면서 그들 모두에게 분노했지만 이내, 아마 나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졌다.

 

 단 한 명의 살인자는 아니지만, 살인자들이 될 수는 있다는 것. 법적 처벌은 받지 않지만, 도의적 책임으로 인해 심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 한 순간의 그릇된 양심이 재앙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분량이 상당한 이 책에서 줄곧 말하고 싶어했던 것은 결국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써 증후군 시리즈를 빼면 국내에 번역된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은 다 읽은 셈이다. '난반사'는 딱히 극적인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긴박감이 넘치는 것도 아니지만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전엔 누쿠이 도쿠로가 이렇게 역량있는 작가였는지 몰랐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쉬이 간과해버리는 뜨끔한 진실을 이토록 진중하게 이야기할줄 아는 작가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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