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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지지엔즈 지음, 김진무.류화송 옮김 / 불광출판사 / 2022년 4월
평점 :
[철학자의 불교 공부 노트] 너무나 좋은 책. 그래서 놓기 싫은 책. 아껴 읽은 책. 수행하며 마음에 새길 부분이 많은 책. 철학적으로 개진하는 차근차근 논리 흐름 엄청 좋아하는데 거기에 나의 사랑 불교를 곁들였다니,그냥 나에게 딱이었던 책!
정말 많은 주옥같은 주제들이 있었지만, 작가가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앎이 없음을 앎”을 말하는데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 꼭꼭 간직하고 싶은 내용이라콕 집어 내용과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남송의 시인 신기질은 [추노아]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린 시절 시름의 맛을 모르면서, 즐겨 누각에 올랐네.
즐겨 누각에 올라, 새 노래를 짓느라 억지로 시름겹다 했지.
이제 시름의 맛을 다 알게 되니, 말하려다 그만 두네.
말하려다 그만 두고, 그저 상쾌한 가을날이로구나 하네.“
여기에서 소년은 진정한 시름을 모르다가 ‘시름’이란 글자를 배우고 무척 즐겨 썼다.
한편으로는 놀면서 한편으로는 ‘아’ 하고 한숨을 쉬며,
마치 살아가면서 얼마나 뜻대로 되지 않는지 모든 것이 슬픔과 근심뿐인 듯
운율에 맞추어 시를 지었다.
그러나 살면서 시름의 맛을 제대로 체험하고 나서
오히려 말하려 하지 않고 태도를 바꾸어 청량하고 좋은 가을의 정취를 바라본다.
시름의 고통이 안에서 승화되고 나서 더욱 처량함이 드러남을 이야기하고 있다.(본문 189p)
나 또한 이 소년처럼 고통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고,
또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것이라 여길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해 본 고통들에 대해 그게 얼마나 깊은 맛을 내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꽤나 짙고 쓴 맛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그 정도는 짙은 것도, 쓴 것도 아니라며 자신이 먹어 본 더 깊은 고통의 맛을 언어로 설명해 내보일 것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아닌지 그런 건 알 수도 없고 주관적 경험을 말하는 차원에선 중요하지도 않다.
다만 중요한 건, ‘앎이 없음을 앎 (無知之知)’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부류의 시름의 맛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앎이 없음을 앎’을 지니지 못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소년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안다고 여길 것이다.“ (190쪽)
‘앎이 없음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겸손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옛날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즉 ”너 자신이 무지함을, 너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음을 알아라“ 라고 했던 것과 같이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그럴 것이다’라고 추측한 것 또한 명확한 앎이 아니고, 누군가를 헤아림에 있어서도 언제나 ‘그럴 수 있음’을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그것을 자연스럽게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에
무시하거나 옳지 못한 것, 그릇된 것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신과는 다르다며 선을 긋기 쉽다.
또 직접 느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겪어보기 전엔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다, 당신이 약해서 그렇다, 징징대지 말고 기운내려고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라.”라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여전 후회한다.) 우울하다는 게 입안에 쩍 달라붙어 떼어내려해도 여간해선 안 떨어지는 엿 같은 것이란 걸 나는 어리석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알 수가 있었다. 그 밖에도 나의 어리석고 오만한, 다 안다고 착각하는 일들은 꽤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야 잘못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던 잘못들을 알게 되었다. “앎이 없음을 앎”이 부족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계속 수행을 하고 심리 공부를 하면서 점점 겸손해지는 법을 배워가고내가 지금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언젠가는 깨질 수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여전히 갈 길이 멀다.
내가 좋아하는 명상 스승님께서 수행은 나선형으로 나아간다는 말을 해주셨다.
“오 나 이제 알 것 같아!” 했을 때쯤 다시 나선형으로 돌아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니, 나 다시 모르겠어.. ” 그런데 그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나선의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듯이
차근히 수행의 목적인 깨달음을 향해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 스스로 “나 이제 다 알았어! 다 깨달았어.” 하거나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며 성급한 결론을 내버린다면
나는 그냥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알아갈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재미도 없을뿐더러 굳어진 관점으로 인해 오해와 소통의 어려움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내 세계가 다양한 색을 잃어갈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자.
함부로 다른 사람을, 다른 세계를 속단하지 말자.
내가 경험해보고 느껴보지 못했다 해도
그것은 어딘가에서 빛나며 존재하고 있음을,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걸 만나게 될 수도 있음을 알자.
그리하여 수행하며 나를 활짝 열고
나의 앎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줄
모든 고통과 즐거움과 순간순간들을 기다리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