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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선, 양버즘나무 ㅣ 그늘 중편선 3
김시홍 지음 / 그늘 / 2026년 2월
평점 :
『물과 선』에 실린 「양버즘나무」는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다.
크게 요동치는 사건 없이도,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개되며 독자를 그 안으로 이끈다. 그 중심에는 ‘양버즘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인물들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기억을 품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작품 속에서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이자 마음의 경계를 의미하고, ‘물’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감정의 흐름처럼 다가온다. 인물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조심스럽게 선을 그으며 살아가지만, 결국 감정은 물처럼 번지고 스며들며 그 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절제된 문장이 깊은 울림을 준다.
인상적인 점은 시간의 흐름이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독자는 어느 순간 인물의 기억 속에 함께 머물게 된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를 따라가듯, 한 사람의 시간이 조용히 쌓여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이 소설은 특별한 결말보다,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양버즘나무 아래에 가만히 서 있는 듯한 여운, 그리고 지나온 시간과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잔잔한 울림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