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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 피터에서 피터 2.0으로
피터 스콧-모건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2년 11월
평점 :
📍 ‘이거 실화냐?!’
처음에는 소설인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서술은 일인칭, 풀네임 그대로 불리는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피터 스콧 모건의 실제 이야기였다. 운동뉴런장애(MND, 루게릭병, ALS 등이라 부름)를 갖게 된 작가는 제목 그대로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 “이제부터 나는 찰스 디킨스가 말하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을 보내게 되겠지만, 정말 멋진 여행아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하의 이 모퉁이에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가장 멋진 테크놀로지를 찾아내야 한다. – 이제부터 모험이다! 우리는 모험을 사랑한다!” (105쪽) 내가 이 병에 걸린다면 나 자신을 미래의 자산이라 생각하고 감히 생각지도 못할 항문절제술, 후두개 절제술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등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메타버스가 핫한 주제이자 또 다른 신세계라 불릴지라도 자아를 AI와 아바타에 깔아놓고 육신은 잠든 채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탄탄한 정신력과 의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세상과 싸웠어. 우리는 항상 섬 같은 존재였지. 우리에겐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어. 그들도 우리를 원치 않았고. 그런데 이제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지도 몰라.” (178쪽) 넷xx스의 다큐멘터리에서 작가가 20~30대였던 당시 동성애자는 섭리에 어긋나는 부도덕적인 인간들이자 범법자, 잠재적 강간범 등 지금보다 더 배척받는 사람들이었다. 작가 역시 사립학교를 다니는 ‘금수저’였으나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나름) 촉망받는 미래를 잃었으니 말이다. 그와 그의 연인 프란시스의 대화처럼 책 속에는 아웃캐스트, 아웃사이더로서 그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자신의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을까? 모두가 자신을 그리 배척했는데도? 그는 온몸이 굳고 목소리마저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MND(ALS) 자선 재단을 설립하며 말한다. “… 이 재단은 현재 장애에 맞설 수단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희망의 등대가 될 것입니다. ..(중략).. 우리가 들어올리는 불꽃이 밝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불꽃을 함께 들고 그 길을 더 발게 비출 것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불꽃의 수호자임을. 그리고 그 불꽃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다움’이라는 것을.” (395쪽)
📍이 책은 어떤 주제에 시선을 맞추느냐에 따라 장르가 다양해질 것 같다.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삶을 그렸기 때문에 전기, 자서전이라 볼 수 있으나,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 영원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보면 SF같다. 또 프랜시스와의 사랑을 본다면 애정물 같고 동성애를 본다면 BL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흥미롭고 재밌다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된 것은 이 다양한 장르가 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 때문 아닐까? “때로는 사랑만이 규칙을 근본적으로 깰 만큼 열렬하고 용감할 수 있다. 때로는 사랑만이 진정한 마법을 일으킬 수 있다.” (405쪽)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암암, 그래, 사랑은 위대하지. 감동을 부술 수 있으니 이 문장은 쓸 수 없겠다. 410쪽에서 아랫입술을 앙 깨물고 눈물을 꿀꺽 삼켰다는 거. 라하일란과 아발론의 사랑이 가상현실 속에서라도 영원하길…🤖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TV의 차트프로그램에서 체스를 두던 로봇이 상대 어린이 선수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것을 보았는데 남편과 “스카이넷이 조만간 인간을 지배하겠구만”이라고 했다. 우리는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 중 무엇을 선택할 지에 대해서까지 이야기 했다. 이 책 속 이야기는 그 전 단계라고 해야 할까, 인간이 AI에게 지배당하지는 않으니 낙관적이라 할 수 있으나 독서 초반에는 나만의 온갖 다크한 상상력이 가미되어 약간 으스스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