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하루 - 다정하게 스며들고 번지는 것에 대하여
강건모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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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땐 롤러코스터 같은 굴곡을 사랑했다. 삶은 조금 거칠게 굴곡도 있으면서 감정의 변화무쌍함도 즐겨야 한다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탈하길 평범한 것이 가장 비범하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Aging, 나이 먹음이라는 것이 그럴지 모르겠으나 가장 가까운 관계들과의 삐걱거림, 녹록하지 않은 사회생활, 서른 중반부터 매년 한 번씩 올라가던 수술대까지.. 남들은 한 번 겪을까 말까 했던 일을 껴안고 살다 보니 #무탈 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돼버렸다.

2023년 마지막 문턱을 넘기기 전 읽은 이 책은 일상이 무탈하길 염원하는 따뜻한 위로이다. 첫 표지를 넘기자마자 보인 내 이름이 새겨진 작가 분의 서명이 배려로 다가왔다. 책의 활자가 큼직하니 눈 안에 들어오는 것도 말이다.

 두려움으로 새겨진 상처의 기억은 외부 세계에 대한 도피와 혐오, 배척, 공격성을 강화한다. 스스로 맞서기 어려우므로 일상을 난폭하고 뒤틀리게 바라보도록 조종한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마음이 있으니 그 반응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46)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좀 전에 카운트다운을 마치고 새해를 맞이 했다. 책의 첫 장도 새해 아침을 맞이하며 연필을 깎는 하루로 시작된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 생활을 선택한 뒤 보여주는 일상은 도시 냄새 없이 참 평화롭다. 경계를 잃지 않는 길 고양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가 분에게는 다정함을 보여주는 묘선이까지. 어쩌면 따뜻한 내면을 누구보다 민감한 감각을 지닌 고양이들이 더 잘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인간 역시 경험과 감각을 통해 나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이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니 말이다.

 “’기다리다라는 동사는 언제나 목적어를 필요로 한다. 기다림에 대상이 없다면 그 행위의 의미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처럼 기다리는 대상이 기다림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일 테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라는 주어와 기다린다라는 서술어 사이에 어떤 목적어를 놓는 일인지 모른다.” (82-83)

 기다림은 나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니다. 성질이 급해서 그럴지 모르겠으나 사실 기다림이 주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긍정적인 경험이 축적되면 기다린다는 행위도 자연스러운 행위가 될 수 있을 테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맞닥뜨린 적이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 순간에 느끼는 불안함이 큰 편이다. 요즘은 스마트폰도 있고 책도 갖고 다니니 기다림의 스트레스가 큰 편은 아니다. 책 속 기다림의 문장과 작가님의 이야기를 보며 기다림을 스스로 정의해보게 되었다.

 “’잘 보고 듣고 행동하고 이해하고 잊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인식을 통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야기하기도 그 방법의 하나가 되겠지요. 실은 제가 무탈한 하루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에게 스며들고 싶어 언 손을 녹이듯 이야기를 하고, 당신에게 번지고 싶어 나무 그늘이 되어 이야기를 듣는 것.” (13쪽 책장을 펼치며 중)

 작가 분이 4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쓴 글들을 엮은 이야기 - 책 띠 지의 추천사에 나와있듯 활활 타오르지 않아도 뭉근히 오래 불을 밝히는 뜬불처럼 고요한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어떤 사람은 만나면 같이 공연을 보러 가서 악악 소리지르면 재미있을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같이 투덜거리면 좋을 것 같다. 작가 분은 볕이 좋든 비가 오든 눈이 쌓이든 사방이 고요한 어느 날에 차 한 잔 나누며 이런 일이 있었네요.’하고 푸념하면 , 네 그렇군요, 고생 많으셨네요하고 조용히, 다정하게 공감해주는 분 같다.

In this cold world…… 차가운 세상에 글이 따뜻한 공기로 다가오는 건 아마도 내 마음에 위로가 필요해서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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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문화 - 내부자가 된 외부자 교유서가 어제의책
피터 게이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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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게이가 1968년에 펴낸 명저인 <바이마르 문화>는 1919년 1차 대전 패배 이후 갑작스럽게 세워져 1933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존속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만개한 문화가 준 영향력을 정직한 시점으로 보여준다.


 나에게 바이마르 공화국은 아주 잠시동안 존재했던 명목상의 공화국이자 히틀러의 나치당이 집권하며 해체된 존재감이 미비했던 한시적인 체제이다. 그래서 정치적 분쟁에 가려진 문화적 화려함을 알 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세계의 관심이 독일의 무용, 독일의 건축, 독일의 영화, 독일의 소설, 독일의 연극, 독일의 미술과 음악으로 쏠렸다. (노턴판 서문 중)”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이름만 들어도 ‘아아~’할 정도의 인물들의 이름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은 쉽지 않다. 사실 서평단 활동을 하며 선택한 책 중에 내 독서경력으로는 난해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완독을 하는데 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가며 읽었으며, 마치 인문학 강의를 듣는 듯 숙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누차 어렵다고 말하더라도 완독한 순간 지식의 세계가 확장된다는 것은 명확하다.


 “바이마르인들은 트로이의 목마를 도시 안으로 가져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제작을 지켜보고 그 설계자를 자진하여 숨겨주었던 것이다.” (70쪽)

 “대부분의 독일인이 무엇을 갈망했든, 그것은 절충적 형태건 비판적 형태건 이성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108쪽)

 만약 당시 독일의 정치계가 좌-우익 정당의 갈등과 보수주의 혁명, 청년 보수주의, 국가 볼셰비즘, 프로이센 사회주의 등 태동했던 수많은 운동으로 혼돈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다만, 니체, 릴케 등 이 짧은 시기에 강렬한 영향력을 주며 현대 문화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을 생각한다면 이후 독일인들이 반유대주의, 반공주의, 인종주의, 군국주의의 나치당을 선택하였다는 것이 씁쓸하기만 하다.


 “몇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고 바이마르 사람들은 흩어졌으며, 그들과 함께 바이마르 정신은 내적으로 변화하여 이솝 우화가 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으로 소멸했다. 다른 이들은 베를린에서 문 앞의 노크 소리 뒤에, 또는 스페인 국경에서, 파리의 임대아파트에서, 스웨덴의 어떤 마을에서, 브라질의 도시에서, 뉴욕의 호텔방에서 자살로 바이마르 정신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또다른 자들은 바이마르 정신을 실험실에서, 병원에서, 언론에서, 무대에서, 대학에서 소생시켜 위대한 발전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얻게 하여 망명지에서 이 정신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주었다.” (270쪽)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던 유태인 저자다운 글 마무리이다. 배가 고프면 책을 팔아서라도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높은 실업률,  초인플레이션 등 당시 상황을 생각한다면 수많은 청년들이 불안을 이기기 위해 급진적 우향을 선택하며 나름의 개선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와 모순적으로 찬란히 빛났던 문화의 소멸과 2차 대전 전후 독일인들이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썼던 것을 보면 이성을 지키고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통찰력과 정치와 문화 사이에서 시선의 균형을 유지하며 쓴 이 책은 소장해야 옳다. 한 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다시 읽는다 해도 숙독할 것을 권장한다. 명문은 눈으로 읽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머릿속에 새겨 넣어 나 자신을 이성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자양분으로 남겨야 한다.

"바이마르공화국은 지금부터 겨우 35년 전인 1933년에 소멸했지만, 벌써 전설이 되었다. 고통스럽고 짧게 존속하다가 살인과 지병과 자살이 혼합된 것과 같은 죽음을 맞았으나, 길이 기억될 업적을 남겨 때로는 희미하였을지라도 언제나 찬란했던 감동을 인간들의 정신에 남겨놓았다." (머리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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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곽선생뎐 싱긋나이트노블
곽경훈 지음 / 싱긋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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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곽 선생은 평범한 암행관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한 다른 암행관과 달리 곽곽 선생은 절도사 같은 부류를 영원히 삼켜버리는 태풍 같은 존재였다.” (31쪽)

찢어진 눈매, 오뚝한 콧날에 얇은 입술, 검은 두건과 검은 옷, 흑단에 쇠를 입힌 몽둥이를 양손에 들고 있는 무적의 싸나이. 자신의 아버지에 이어 쥬 왕의 암행관으로서 전국을 누비며 부도덕하고 악한 자들을 일망타진하는 평현 곽씨 집안의 이름 역시 곽이요, 곽곽 선생의 이야기를 그린 책이다.

이 책의 배경의 절반은 현실, 절반은 허구를 입힌 듯하여 첫 문구에 갸웃하게 되었다. 흑도? 쥬? 와? 카락은 무엇이며 열교의 백색당과 혈교, 내수교는 무엇인가? 마치 현실 A와 허구 B 사이의 점선을 잇듯 조선, 왜, 유교, 천주교 등 단어들을 덧씌워 연결해 보며 읽게 된다.

“실상은 국왕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 밀정이었으며 악랄한 사냥개에 불과(196쪽)”한 곽곽 선생은 어떤 인물인가? 이 책 속에서 그가 하는 행동은 국왕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의의 사자라 부를 수 없다.
그는 백색과 흑색 사이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므로 왕이 보호 하에 일단 지킬 건 지키되 할 건 다하는 유쾌한 인물로 보인다. 특히 그가 흑단 방망이로 ‘기준에서 어긋난 이들’을 처단할 때 ‘캬’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우리가 영화 <범죄도시> 속 괴물형사 마석도(마동석 역)를 보며 느끼는 호쾌함과 유사, 또는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곽곽선생뎐>을 영상화하게 된다면 곽곽 선생은 당연히 마동석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흐름은 빠르다. 책 속 몇몇 장면은 마치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화면이 깜빡 꺼진 뒤 다시 켜졌을 때 극의 후반부/엔딩으로 이동한 것 같았는데, 이는 마치 작가 분이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주욱 쓰다가 중간에 서술해야 할 (흐름상 뻔하게 전개될 것 같은) 내용을 “이후 일어난 일은 독자의 상상에 맡김!”하며 생략한 느낌이었다. 이 생략된 내용을 모두 서술했다면 현대사극 TV시리즈가 될 테고, 책 내용과 같이 생략의 미학을 발휘한다면 영화 한 편이 나올지 모르겠다. 그만큼 영상화가 기대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이 책의 내용이 끝난 뒤 적혀있는 게 크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배치가 왠지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과 집중력을 유지하려 한 작가 분의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네, 혹시 곽곽 선생이라 들어보았는가? 그게 바로 날세.” (28쪽)
씅질 나면 귀족자재 왕족 할 것 없이 정의봉, 아니 흑단방망이!
글자로 캬~ 시원한 사이다 느껴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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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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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따끈한 책을 이번 크리스마스 주간부터 읽어보려 합니다. 낯선 피츠제럴드와 익숙한 하루키의 조합이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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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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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구제라는 말은 사회복지라는 말로 바뀌었다. 신청자 귀에는 빈민 구제만큼이나 나쁘게 들리는 센소리 명칭이다.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욕으로 가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늘 존재할 것이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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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국민행복지수 5위 안에 위치한 나라 스웨덴, 그곳에서 다섯아이를 키우는 이혼녀이자 싱글맘으로 살았던 1918년생 저자의 인생은 어떠했을까?

저자는 책의 제목 그대로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살아온 청소노동자이다. 그녀는 52세에 일기소설로 데뷔하여 수상과 함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9년 사망한 그녀의 30주기를 맞아 2019년 그녀의 이름을 딴 광장이 생겼으니 유명작가 뿐 아니라 국가차원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가졌던 인물임이 분명하다.

또한 단순한 개인의 일기가 노동운동, 좌파운동, 여성운동의 관점을 반영한다 할 정도이니 책의 내용이 단순히 하루 일상을 그린 일기보다 저자의 식견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 된다 할 수 있겠다.


 책의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은 것은 1953년 한국 위기로, 다섯 아이의 겨울옷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한국 생각을 하며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14쪽)라고 생각한다.

지구반대편의 비극을 걱정하면서도 그녀는 앞으로 계획적인 살림을 할 것을 다짐하며 냉정을 찾는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역할이자 가장 어려운 직업은 엄마로 사는 일 같다. 일종의 책임이 생기고 날마다 무능력을 실감한다. 모성의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적어도 몇 분 정도는 그럴 것이다." (59쪽)


 노동과 육아, 학업을 병행하면서 독서와 사색을 잊지 않는다. "소유하고 유지하려는 열렬한 욕망, 소유병은 전쟁의 극히 중요한 원인이자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정치세계를 괴롭히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49쪽)

자신이 읽은 버트런드 러셀을 이야기하며 그녀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좀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내면의 고통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삭히는 것보다 외부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됐다.

또한, "가난하다는 것은 가슴속에 항상 큰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담배를 피우거나 다른 식으로 낭비할 때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이다."(93쪽)라고 하며 감정적으로 젖어들 것 같은 현실을 해석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와 사뭇다른 복지 시스템에 감탄하기도 했다. 때때마다 옷을 지급하고, 의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작가는 이를 단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죄인의 의자'에 앉아 구걸하느니 사회복지과에서 청소하는 편이 더 낫다고 하며 무작정 복지 혜택에 기댈 것이 아닌 노동의 값어치를 강조한다.


 "사회복지대상자를 처음 방문할 때 공무원은 우리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복지대상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296쪽)

 '약자복지'를 하겠다는 정부는 이와 반대로 2024년 보조금 예산을 5000억 이상 삭감하겠다고 발표하며 복지 분야에 그 초점을 맞추었다. 

빈부의 격차가 명확히 드러나는 자본주의 사이에서 이 커다란 갭gap을 줄여주는 것은 복지일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이런 복지제도가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시행되었다.

물론 당시 한국은 전후복구로 말미암아 인권, 노동권, 복지와 같이 기본적이고 섬세한 부분을 신경쓰기 어려웠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선진국 대열에 오른 지금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하에 약자에 대한 구제책을 줄인다는 현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본 서평은 교유당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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