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꽃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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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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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건 의미가 특별하다고 해야할까? 일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시작과 끝이 있다. 그 마지막을 함께 하는 것과 마지막을 맞아야 한다는 것. 어쩌면 모든 일에서 마지막의 의미는 참 깊고도 가슴 저민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사실 조정래 작가가 쓴 젊은 사랑 이야기라는 것도 낯설었고, 그 사랑을 짐작하는 게 어려웠다. 나는 이런 사랑을 한 적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사랑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라는 의미보다는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을까?’가 더 적당한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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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라서가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을 책임지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람을 위해서 ‘나’의 미래도 접어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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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2편의 시작은 아픈 윤소인을 데리고 함께 장흥 가지산 보림사 부근에 통나무 집을 얻은 이재이가 함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암을 발견하고, 병원에서 치료한 후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몸을 회복하는 것은 사실 다행스러운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암을 발견했을 때 이미 ‘몇 개월 남았습니다’ 이런 말을 듣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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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있고, 바다가 있고, 숲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했던 재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가 서린 산에 있는 보배로운 숲의 절’이라고 하는 보림사에서 마음과 몸을 보양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던 소인은 어느날 부처님이 자신에게 손을 뻗은 상태에서 말을 하는 꿈을 꾼다. 재이가 그걸 보고 완쾌된 거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윤소인을 사랑하는 마음인지 절로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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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는 윤소인이 병을 낫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한쪽에 매일 36개씩 ‘완쾌되기를’이라는 글짜를 썼고, 그런 수첩이 자그마치 4권이나 되었다. 정말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윤소인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화실을 마련하고 부지런히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도록 마련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모든 걸 다해줄 수 있는 게 참 부러웠다. 내가 받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특별한 마음인 것 같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실패했다고 힘들어하던 소인은 쓰러졌고, 다시 재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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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6개월이 남았다면 우리는 무얼 하게 될까? 소인이 선택한 건 보고 싶은 그림들을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파리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반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 떠나게 된다.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마. 이건 가엾고 불쌍한 내 애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마련한 거야.’

이 혼잣말을 하는데 이재이의 목은 속울음으로 박혔다.

마지막 선물……. 인생 마지막이 이렇게 허망하고 다급하게 닥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1년만 기다리면 그녀가 소망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허송세월을 복구해 화가의 꿈도 이루고, 이 세상에 복수도 하고 그런데……. 이렇게 참혹한 실패를 해버릴 줄 알았더라면……. 아니,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쓰러졌을 때, 그때 왜 단호하게, 강압적으로 그림 그리기를 막지 못하고, 중단시키지 못했던 것인가. 그때 이미 재발의 기미를 띠고 있었던 것인데…….




책의 후반부는 둘이 미술관에서 반고흐의 그림들을 만나는 것으로 천천히 진행된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오는 그림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게 되었다. 모르는 그림도 꽤 많았고, 알고 있는 유명한 그림들도 있었다. 누군가, 마음을 다해 예술을 알고 즐기게 되면 이렇게 내 생애 마지막에 꼭 보고 싶어질 수 있는 것도 참 특별한 것 같다. 나는 문득 마지막이라면 무엇을 보고 싶을까 생각하게 된다. 딱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마도 그냥 도시가 아니라, 산이 보이고, 강이 보이는 그런 숲에 있고 싶을 것 같다. 문득 그런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마음이 기울어진다. 내가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만약, 윤소이처럼 끝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하고 있는 재이라는 사람이라면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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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인과 이재이는 자신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반 고흐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린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이 풍경 속에는 그림에 있는 두 가지가 없었다. 하나는 그림 중앙에 뻗어나가면서 꺾이고 있는 넓은 길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그림 오른쪽 하늘을 가득 채우며 날아가고 있는 까마귀 떼가 없었다.

그런데 윤소인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까마귀떼를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

그 까마귀 떼에 반 고흐가 실려가고 있었다.

그 다음에 그 까마귀 떼에 자신이 실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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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마지막을 알게 되었을 때의 윤소인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니 회색빛 하늘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내내 밝았던, 햇빛이 가득했던 하늘은 오후가 되자 구름이 가득하고 흐린 회색이었다. 하늘만큼 마음이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 윤소인의 마음이 더 검게 가라앉았을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오고 난 후 윤소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이재이가 열흘이 넘게 기다렸을 때, 마지막 소인의 긴 편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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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 소인이 자기가 떠났을 때, 이재이가 선택할 삶을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헛헛했다. 정말 소인이 복이 많은 여자인 것이겠지만, 또한 그런 마음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이재이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

오빠, 우리의 사랑은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만큼 진하고 뜨거웠습니다. 반 고흐의 그림들처럼.

아쉽고 안타깝지만 행복하고 또 행복했습니다.

고통에 시달리면서 사흘 동안 이 편지를 쓰며 흘린 눈물이 한 사발은 될 것 같습니다.

편지가 너무 길어졌지만 못다한 말은 가슴에 태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주신 선물 두 가지는 저승까지 가지고 가렵니다.

미국에서 쓴 수첩 1권과, 저의 완쾌를 기도한 수첩 4권 말입니다.

오빠가 언젠가 읊었던 어느 시인의 짧은 시 ‘내생’,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를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편지를 끝냅니다.

그리고 저의 마지막 말을 드립니다.

“오빠 사랑합니다. 영원히.”

당신의 소인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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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지막 편지를 받으면 어떤 마음이 들지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보림사로 떠란 재이의 마음도. 그리고 소인을 따라간 마음도. 그냥 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을 읽고 어떤 생각, 어떤 느낌을 가지던 그건 읽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이 기억났다. 나는 그냥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재이와 소인이 부럽고, 이렇게 함께 할 수 있기 위해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 또 부러웠다.


책을 덮으면서 조정래 작가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쓰는 건 어느 한정된 분야만은 아니겠지만 새로운 작가님의 글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부러웠다. 다시 또 작가님의 책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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