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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가장 느린 것들이 가장 오래 빛난다
이유리 지음 / 청림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처음 책을 선택할 때, 식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잘 모르는 내가 읽을 때 어렵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다. 지금도 늘 식구들이 식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나를 말리는 이유가 있다. 물을 주는 시기를 잘 맞추지 못하고, 햇볕을 봐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하지 못해서 종종 키우던 식물의 마지막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 키우지 못하지만 희안하게도 식물을, 특히 나무가 있는 숲을 정말 좋아한다. 숲을 산책하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환해진다. 식물들의 냄새도 좋고, 꽃이나 열매를 보는 것도 즐겁다. 희안한 식물을 발견하면 궁금해서 한참 쳐다보게 된다. 그런 마음만 있어도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슬그머니 책을 집어들었다.
책의 맨 뒤에 있는 말,
“우리는 모두 나만의 봄에 피어납니다.”
봄보다 먼저 꽃잎을 여는 매화, 모두가 지고 난 가을에야 비로소 피어나는 소국... 식물은 언제나 자신의 계절을 조용히 기다려왔다.
나만의 봄이라는 말에 눈이 한참 멈춰 있었다. 작가는 식물에 대한 설명이나, 식물이 가진 특성을 설명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신기하게 연결해서 한참 눈이 멈춰있게 한다. 중간쯤이었을까? 작가가 독학으로 컴퓨터 공학을 학부에서 전공하고, 나중에 생물학과에 진학해 대학고 대학원을 거쳤다고, 그렇게 공부한 작가는 지금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라고 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이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냈을 때, 보기좋게 1차부터 거절당하는 것을 밥먹듯이 당해본 사람들은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 같다.
나에게는 부끄럽지 않은 학위였다.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달랐다. 아니, 현실의 벽보다 더 넘기 어려운 건,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벽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그 목소리는 어느새 내 안의 목소리가 되어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손을 뻗어 경계를 넘는 것보다 그 경계를 넘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더 어려운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
그러나 일단 마음을 먹고 손을 뻗어보니, 생각보다 경계는 단단하지 않았다. 실제의 벽보다 내 안의 벽이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 속의 벽이 더 높았던 건 아닐까.
그렇게 무언가 벽을 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식물다움’이라는 정의를 뒤흔드는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끈끈이주걱, 파리지옥, 카펜시스, 아그나타. 이런 식물들의 육식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작가의 현실에 대한 도전과 이어져 새로웠다. 그리고 그 육식성이 사실은 식물성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가까이 내재해 있던 가능성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날 처음 알았다. 모든 꽃이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걸. 그리고 모든 아름다움이 눈에 띄어야할 필요도 없다는 걸.
사실 다르다는 것 혹은 원래의 길을 똑같이 걷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물의 다른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 그중 내가 얼마나 작은 것들만 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또, 식물이 글루타메이트 수용채를 매개로 상처를 주면 빠르게 전류를 생성해, 상처 부위에서 시작해 주변 잎으로 퍼져나가게 한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물도 아픈 것을 전달한다니, 그것만이 아니라 벼의 꽃에 대해 설명했을 때, 정말 벼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에도 놀랐다. 책을 읽는 곳곳에 처음 알게되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도 신기했지만, 그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게 우리의 삶,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작가의 생각이 재미있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은 많은 이야기들 속에 식물들이 살아있었다. 커다란 나무로, 꽃이 피는 작은 식물고, 풀로 그렇게 말이다. 하늘 높이 뻗은 나무도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만큼 작은 종자였다고, 모든 시작이 그렇게 작고 불안정하다는 말에 위로를 받게 하는 작가의 따듯함에 살짝 웃게 된다. 이렇게 많은 식물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나 둘, 누군가에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본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도 이렇게 식물 뿐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본 풍경, 내가 본 미디어에서도 무언가 마음에 담고, 가르쳐 주는 것들을 배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여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그런 모습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