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숲속 오두막으로 -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패트릭 허치슨 지음, 유혜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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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망친 곳에서 인생을 다시 짓다



어렸을 때는 아파트라는 것이 많이 있을 때도 아니었고, 서울 시내 한복판이었음에도 거의 다 작은 집들이 가득했다. 아이들과 골목에서 신나게 놀다가 저녁에 밥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고함소리를 듣고서야 집에 들어갔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주택에 사는 것이 겁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고 싶던 이유도 ‘오두막’이라는 말을 보자마자 ‘아, 오두막에서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패트릭 허치슨도 그러했다. 작은 오두막을 사게 되고, 그 오두막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끊임없이 오두막에 오가면서 오두막이 자신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맞다. 그 작은 오두막이 정말 주인공의 몸의 어느 부분인 것처럼 그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고, 그 속에서 지내는 시간들이 혼자여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여도 늘 새롭고 즐거운 것 같았다.

물론 그 작은 오두막을 얻는 과정부터 그 안에서 사는 과정 모두에서 행복한 마음만 있고, 즐거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오두막을 처음 사서 이곳 저곳 수리할 곳들을 확인하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와서 다들 삐걱삐걱 처음 집이라는 것을 고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부엌도, 화장실도 없는 집이라니 어떤 생각이 들까? 외진 곳에 있어서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 덜렁 집만 서 있는 오두막이 주인공 패트릭이 살만한 곳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정말 하나 하나 생기는 집에 필요한 것들이 신기했다. 오두막을 처음 살 때부터 살 돈이 없어서 엄마에게 돈을 꾸는 것을 보면서 픽 웃음이 났다. 내 아들이 그랬다면 나는 돈을 빌려 줬을까?

화목 난로를 싸게 사서 설치하는 모습, 천장이 무너져 내리고, 아기 난로에 들어갈 장작을 아주 작은 크기로 조각조각 내야 하는 것도, 산사태로 고립된 오두막이 궁금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살피는 모습도, 없던 부엌을 간신히 만들어 내는 모습까지 정말 주인공의 집과 함께 하는 시간은 하나씩 쌓여가고 있었다.

또 이 글을 읽는 것이 편했던 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꿈꾸었던 때문인지 문장마다 마음을 살짝 만지거나,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는 것. 없던 화장실도 밖에 만들고(물론 수세식은 아니다) 집의 뒤쪽을 완전히 다 새로 수리해 내고, 지붕이 망가져 있던 것을 완전히 갈아내는 모습도 처음의 바닥을 수리하던 어수룩한 모습에서 훨씬 발전해 있는 것도 신기했다.

“더 연락할 은행이 남지않았을 때 내 마지막 희망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식이 사업 제안 같은 말을 하면 부모 입장에서 심장이 떨릴 법도 한데 우리 엄마는 참 대단도 하지. 사실상 구걸에 가까운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다. 나는 예금보다 높은 이자를 붙여서 갚겠다고 약속하고 엄마에게서 돈을 빌렸다. 젊은 녀석이 쓸데 없이 구질구질한 나무 집에 돈을 낭비하지 말고 대학원 같은 데나 가라는 엄마의 속마음이 훤히 보였지만 어쨌든 나는 돈을 구했다.”

글 이곳 저곳에서 계속 주인공은 엄마의 트럭을 빌려서 집을 고치러 간다. 그리고 맨 마지막 인사에서도 엄마가 가장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이 주인공처럼 이렇게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결국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멋진가?

패트릭은 결국 마지막에 새로운 오두막을 짓기 위해 자신의 오두막을 팔게 된다. 그 안에서 썼던 모든 것들을 거의 그대로 두고, 난로는 다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을 보고 한참 웃었다. 그리고 그 지역에 땅이 나왔을 때 새로운 오두막을 또 지어서 팔기까지 한다. 패트릭은 이제 목수가 된 걸까?


“한때는 자신이 없었다. 외딴 마을 한복판에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을 사다니 과연 잘한 짓일까? 하지만 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의구심은 서서히 옅어졌다. 이 오두막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곳이었다. 몇가지 기술을 익힐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당시 매년 집, 여자친구, 직장이 달라지던 나에게 드디어 불변의 장소가 하나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됐다. 오두막은 우리 각자가 마음 속으로 느끼면서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향수병을 달래줬다.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지 흥분해서 떠들던 순간에도 사실은 안도감을 표현하고 있던 셈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언제든 만나서 웃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중략)

나는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수천 조각의 퍼즐에 푹 빠졌다. 바깥에서 활동하는 즐거움도 컸다. 쌀쌀한 공기를 가르는 아침 햇살을 느끼며 삽 머리를 땅속 깊이 밟아 넣을 때 코를 찌르는 축축한 흙냄새도 좋았다. 작업을 하다 고개를 들면 믿기 힘들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산봉우리가 멀리서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다.”

사실 나도 주택을 가져보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잠깐 아파트에서 나와 주택에서 전세를 살아보기도 했지만 처리해야 할 마당 일, 집안 구석구석에 생기는 문제 등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꾼다. 작은 주택이라도 집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하지만 와이파이를 쓰려면 25킬로미터를 달려서 술탄의 맥도날드까지 가야 했다. 휴대전화 따위를 들여다보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할 일이 태산이니까. 랜턴에 조심스럽게 기름을 채워야 했다. 차나 커피를 마시려면 콜맨 버너에 물을 끓여야 하는데 그전에 작은 막대기로 펌프질을 해서 연료통에 수동으로 압력을 가해야 했다. 심심하면 책을 읽거나 기타를 쳤다. 숲을 산책하며 주변 산의 경치가 더 잘보이는 자리, 작은 개울, 오래 돼 뒤틀린 나무를 발견하기도 했다. 뭘하든 시간이 걸렸다. 그저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도시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현존’이나 ‘마음챙김’같은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두막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런 정신 상태가 된다. 슬슬 지루해질 즈음이면 고요 속에서 숲과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평온함을 만끽했다. 그러면 어느새 내 마음도 평온을 되찾았다.”

이렇게 휴대폰과 컴퓨터와 떨어진 생활을 얼마나 오랫동안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내내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어느 곳에 가든 휴대폰을 놓을 필요가 없으니까. 문명과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


“온종알 형광등 불빛에 노출되는 사람이라면 권태감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오두막을 떠올렸다. 비 내리는 숲속의 고요하고 평온한 공간을 상상했다. 오두막은 내가 맨손으로 도착해도 금방 아늑한 피난처가 돼주겠지. 회의중에서 회의실에서 박차고 나가서 오두막으로 달려가는 상상을 했다. 언제든지 두시간 내로 불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사무실, 책상, 컴퓨터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있어도 오두막이 선사하는 가능성이 폐소공포증을 잠재웠다. 완벽한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하니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도 전보다 잠잠해졌다.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면 터널 안의 시간도 견딜만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 책이 어떤 내용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낙후된 동네에 버려진 오두막을 사서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겪은 좌충우돌 모험담이라고 대답했다. 삶의 목적을 찾아 해매던 중 오두막을 통해 새로운 직업을 찾고 더 나아가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는 부분은 설명에서 슬그머니 빼버리곤 했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진정한 깨달음의 순간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천지가 뒤집히는 변화의 순간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면 음악이 고조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모든 것이 잘되리란 확신이 드는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면 더 괜찮은 이야기가 탄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두막을 통해 정반대의 사실을 배웠다. 인생에서 그런 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드물었다. 그래서 변화의 순간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은 이 소중한 오두막을 누군가에게 팔았고 그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이렇게 오두막을 보낼 수 있어서 더 소중하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이런 오두막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하고, 나를 보듬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존재 말이다. 작가처럼 나도 그런 경험을 꼭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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