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백년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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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시간을 넘어서 이어진다는 표현이 참 따듯하다. 요즘 베스트셀러로 올라오는 소설들을 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 무섭다는 느낌을 가지는 때가 많다. 극심한 왜곡으로 인해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 누군가의 처절한 분노 이야기 등 현실이 추리소설의 살인사건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지금 내 현실도 마찬가지일 거다. 아슬아슬한 것들이 너무 많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쉬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모두 다 만만치 않다. 어쩌면 그런 현실을 바라보는 소설 속에서 나보다 더 심한 일을 겪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렇게 아슬아슬하고, 깜짝 놀랄만한 거대한 사건들을 마주하는 것보다 이렇게 따뜻하게 누군가의 마음을 살펴보는 이야기가 참 좋다.



쓰가루 백년 식당을 읽으면서 가장 특별한 건 주인공이 딱 한명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장마다 다른 주인공이 ‘나는’을 시작한다. 이런 경우 가끔 조금 이야기가 헷갈리지만 그래도 훨씬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을 그대로 읽어내기는 참 좋다.

가장 많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젊은이는 오모리 요이치(요짱)와 쓰쓰이 나나미다. 둘은 도쿄에서 사는 풍선 인형을 만드는 남자와, 사진을 찍는 여자다. 회사에서 일을 받아서 하는 요짱은 굉장히 내성적이라고 해야 할까? 나나미가 마음에 들어서 풍선에 연락처를 주고도 터질 것을 걱정했지만, 그 터진 풍선으로 요짱을 다시 찾은 건 나나미다. 둘은 하나씩 서로를 알아가면서 타지인 도쿄에서 위로를 받는다.

일본은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젊은이가 서울로 떠나고 나면 아무리 지방에서 부모님의 가업이 있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요짱은 부모님이 하고 있는 쓰가루 메밀국수 식당을 물려받고 싶어한다. 요짱의 처음 직장인 중화요리점을 그만두는 일에서부터, 누나에게 소개받고 일을 시작한 광고회사, 그리고 풍선아트 피에로가 되기까지, 요짱의 일은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내 가슴을 졸였다. 아마 우리 아들들도 이렇게 자신이 정말 할 일, 평생 할 일을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마음에 들어서 시작한 일도 생각과 다르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하기도 한다. 꿈을 이루어서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짱이 나나미와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걸 보면서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나나미와 함께 사진을 찍는 스승의 건강상 문제로 나나미에게 일을 혼자 해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단단하게 자리잡는 나나미의 모습에도 역시 안심이 되었다. 이렇게 젊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일을 하나씩 찾아가는 일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될 것인지는 안봐도 쉽게 짐작이 간다.

요짱이 부모님을 5년만에 다시 찾아오고, 지역의 축제에서 음식코너를 여는 것을 돕게 되면서 나나미도 고향을 찾아와서 투닥투닥 다투는 과정을 거치고 다시 마음을 연다. 요짱이 다시 고향에 내려왔을 때, 자기가 나온 고등학교 후배들이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말이 조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순에이 고등학교 앞에 도착하자 후배들이 줄줄이 하차했다. 나는 왠지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으로 빈자리에 앉았다. 문이 닫히고 다시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역 플랫폼을 걷는 교복 차림의 무리가 차창 너머로 천천히 흘러간다. 그들을 보고 생각했다.

얘들아 중요한 순간에 배턴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

요짱이 이어달리기 대회에서 배턴을 받을 때 떨어뜨리는 바람에 마지막 1등을 하지 못하는 일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나보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순간이 다 그렇지 않을까? 중요한 순간에 배턴을 잡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것 말이다. 때로는 아예 잡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기도 하고, 배턴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많고 말이다. 요짱과 나나미가 하나씩 성장해 가는 모습도 좋았지만, 백년 가까이 이어져오는 식당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좋았다.

요짱이 다시 집을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는 모습을 보면서, 백년이 넘게 식당이 유지될 수 있는 일본의 단단한 전통과 마을의 모습이 참 신기했고,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오랫동안 지켜질 수 있는 무언가가 많았으면 좋겠다. 사람의 마음을 지켜주는 무언가도 이런 전통, 혹은 가족, 음식, 가게 등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것에서 나오지 않을까?

책의 맨 처음 발가락이 없어서 불편한 겐지가 도요에게 받은 천으로 발을 감고 다니는 모습처럼, 누군가와 함께 이렇게 마음을 나누고, 그 마음을 일로 이어가고, 그 일이 백년이 넘게 가족을 통해 계속되는 것, 요짱과 나나미에게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백년 식당이라는 제목이 더 그렇게 만드나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기억되고, 남아서 버티고 있다는 것, 아마 백년 식당은 그냥 먹는 음식만이 아니라 이렇게 무언가 마음으로 전해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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