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스러운 사이 - 제주 환상숲 숲지기 딸이 들려주는 숲과 사람 이야기
이지영 지음 / 가디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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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스러운 사이, 제목이 참 마음에 오래 남았다. 숲스럽다는 말이 이렇게 마음을 조금씩 감싸안아주는 느낌이라니…….

작가는 숲지기 딸이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아버지가 마흔 일곱에 오른쪽 몸이 마비되었다고, 그래서 사람 만나기가 실헝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들어온 숲이라고 표현했다. 가장 낮아지고 약해졌을 때, 비로소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가 들렸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절망하고 낙심했을 때, 모든 것을 내려 놓으니 새로운 시작이 찾아왔다고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곳곳에서 제주의 숲을 만날 수 있었다. 숲해설가로 제주도의 숲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일일까? 아무리 숲이 좋아도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매번 다른 사람, 한 두명과 만날 때도 있고, 열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숲을 다니면서 숲해설가로서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숲해설을 할 때 식물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온전히 나를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서 그럴까? 오히려 숲에서 일하며 숲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표정만 봐도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숲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바로 마주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냥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되고, 나를 향해 숨기거나, 감추는 것은 없다. 내가 보지 못하고 넘어갈 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정말 언제 보느냐,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떤가에 따라 만날때마다 다르다. 표정 속에 많은 것을 읽어내야 하고, 그 사람의 생각을 짚어야 한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많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 숲해설가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숲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해설가가 된다고 해야 하나?

해설가가 해설가를 만났을 때의 마음,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96세 할머님, 여덟살 끊임없이 말하는 아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가는 과정이 엄청 힘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그들을 숲에서 만났기 때문일 것 같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감정들이 있다. 지금 이삼십대는 결혼도 아이 갖기도 포기한 세대란다. 내 주변만 해도 많은 친구들이 비혼을 말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주체적인 나의 모습을 사라졌다. 참 쉽지 않은 과정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통해 나의 세상이 두 배로 넓어졌고, 한 아이를 통해 셋으로, 또 다른 아이를 통해 넷으로, 사람마다 삶의 방식과 생각이 정말 다름을 느끼게 되었다. 네 사람이 지닌 네 가지 방식의 세상을 알게 된 느낌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게 된다.


 

작가는 숲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을 넓혀간다. 어쩌면 숲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들을 더 깊이 생각하고, 담아내고, 마음에 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래서 문득 부러웠다. 많이 부러웠다.

매순간, 직장에서의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50대인 지금도 가슴을 치고, 아들의 소리지르는 모습 하나에도 가슴이 쪼그라드는 이 요란스러운 일상이 힘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숲처럼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그런 존재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숲이 그런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주는 것 같은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나도 숲해설가는 아니더라도 숲에 자주 가서 있게 되면 그런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한 달에

한 번 보름달 즈음의 금요일 밤에 야간 투어를 진행한다. 캄캄한 숲을 걸어야 하니 나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인원만 인솔 가능했다. 그래서 오로지 열 명의 손님들만 받는 산책이다. 밤의 숲은 참 놀랍다. 아침 숲이 새소리로 깨어난다면 밤의 숲은 풀벌레 소리로 채워진다. 매일 걷는 그 길이 새로운 공간으로 변해있다. 숲의 풍광이 눈 앞에 펼쳐지지 않지만,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살아나는 시간이다. 조금 더 옆 사람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고 발끝의 감각과 숲이 주는 향기에 집중하게 된다.


글을 아름답게 쓰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숲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글을 읽어가면서 마음이 많이 편안해져서 더 부러웠다. 닮고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제주도의 숲들이 떠올랐다. 몇 시간을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연결된 넓은 숲들이 유명한 관광지가 된 이유도 이런 것들에 있지 않을까? 비록 그런 숲을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숲 속에 있게 된다면 나무를 보면서, 숨을 크게 들이 마시면서, 내가 가진 부정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싶어진다. 그렇게 마음을 조금만이라도 숲에서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나무들이 나를 보면서 웃어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간단한 지지라도 받고 싶은 것은 지금 내 마음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일 당장, 숲에 가서 한발자국씩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말이다. 숲은 어떤 모습의 나도 다 받아줄 것 같다. 그러하기에 ‘숲’인가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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