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처음 손에 잡았을 때 테라리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히 식물, 책 표지 때문만이 아니라 테라리움이라는 말이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왜 이 제목으로 정했을까 궁금해졌다.
지구가 멸망하면, 사람이 모두 죽게 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모두 없어진 지구에 무엇이 남았는지가 사실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문득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구는 멸망하고, 남은 것은 식물들과 지구를 멸망시키는 데 쓰였던 흔적들이다.
주인공을 소년이라고 해서 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까 이상했다. 뒤로 가서 소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 의미가 이해가 갔다. 지구가 멸망한 세계는 참 복잡했다. 남은 것들도, 지키는 것들도, 그리고 멸망한 세계의 의미도 말이다.
멸망한 지구에서 소년을 벙커에서 키우던 엄마가 사라졌다. 기다리던 소년은 결국 엄마를 찾아 벙커에서 나오게 되고, 엄마의 흔적들을 찾아가게 된다. 어쩌면 소년은 그냥 벙커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을까?
소년이 만나게 된 진실은 참 어렵다. 파괴된 지구, 엄마가 왜 소년을 키웠는지, 엄마는 또 왜 소년을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는지 이런 모든 것들이 말이다. 그래서 문득 그냥 이런 진실들을 만나지 않는 것도 용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실을 모두 안다고 하는 것도 꼭 의미 있는 일인가? 가끔은 그냥 모르는 것으로 덮어두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있지 않을까?
중간에 나오는 죽음을 의미하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지구에 온 다른 별의 지능 헨리에타, 그리고 지구를 멸망시키게 했다는 엄마, 엄마가 간절히 지키고 싶어했던 마르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과 개체들을 만나면서 자꾸만 뒤로 물러서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