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주인간이 무엇을 말할까 궁금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아는 기생충이 사는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동화에서 흔히 나올만한 소재가 아닌 것 같아서 제쳐두었다. 국어사전을 검색하니 ‘기생 생물이 기생하는 동물 또는 식물’이라고 숙주를 정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숙주 인간은 기생 생물이 사는 인간을 말하는 거다. 주인공 승주는 기생충을 연구하는 과학자인 엄마와, 우주 과학자인 아빠 사이에서 자신이 늘 제대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에어로켓, 강아지로봇, 과학퀴드대회 등 다양한 관련 대회에 나갔지만 결과는 그저 참가상일 뿐이었다. 엄마나 아빠가 그런 결과에 대해 무어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거다.
문득 승주의 마음이 백번 이해가 갔다. 나도 많은 순간, 내가 이것저것 벌여 놓은 것들에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에 많이 속상해한다. 누군가에게, 특히 가족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승주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엄마, 아빠에게 더 인정받고 싶고 칭찬을 듣고 싶을 거다.
승주가 밤하늘을 보고 있던 어느날, 무언가가 굉음을 내며 승주를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승주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계속 이야기를 건내고, 승주의 이야기에 답을 하는 것은 기생생물! 진짜 의외가 아닐까?
‘내 몸 속에 무언가 들어와서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흥미로울 수도 있고, 어쩌면 외롭지 않게 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 몸에 같이 있다는 것은 조금 두렵지 않을까?
승주는 그 생물에게 제로라는 이름을 붙이고 친구처럼 늘 이야기를 나눈다. 승주에게는 도하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도하와의 만남을 엄마의 반대 때문에 작년에 결국 포기했다. 엄마는 도하가 승주보다 잘났다는 사실 때문에 교제를 반대했다. 도하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될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승주는 도하를 포기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라는 것이 더 상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그걸 느낄 수 있을까?
여하튼, 승주와 도하가 함께 탐구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관계에 대해서도, 그리고 기생생물인 제로에 대해서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내 몸에 나 외에 다른 생물이 산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재미있을 것 같은데, 늘 불안하지는 않을까? 친해지면 떠날까봐 두려울 것 같고, 내 몸에 어떤 해가 생길까봐 그것도 무서울 것 같다. 승주는 많은 순간에 현명하게, 제로와 함께 했지만, 결국 엄마와 아빠, 승주까지 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제 와서 도망가라느니, 다른 숙주를 찾아보라느니 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넌 그때 이미 날 죽인거야. 천승주, 어차피 넌 그 약을 복용하고 말 거야. 너랑 지낸 25일하고도 8시간 39분 동안의 데이터베이스로 미루어 보았을 때, 넌 그 선택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