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두꺼운 책을 잡으면 조금 망설여진다. 이 책이 재미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으면 몇 번을 다시 폈다 들었다 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레니와 마고의 백년, 이 책은 며칠 동안 낼 수 있는 여유 시간을 다 내도 끝까지 읽지 못해서 아쉬웠다. 자그마치 499쪽이나 되는 거대한 소설이니까. 3일간 퇴근하고는 다른 일을 제치고 계속 붙잡고 읽어 내려갔다. 오랜만에 열심히 책을 읽었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기도 했고, 반대로 슬퍼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어리거나 나이가 많거나 모두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버거울까?
레니가 그랬다. 17살의 레니는 병원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환자다. 누군가 데려다 주어야만 다닐 수 있는 그런 환자인 레니가 마치 병원이 모든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살던 레니가 만난 병원 안의 사람들은 레니에게 무언가를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준다. 성당에 가서 아서 신부를 만났을 때 믿는 것과는 크게 관계 없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신부를 당황하게 할 때도 그랬다. 미술실의 피파를 만나서도, 마고를 만났을 때도 17살 아이 같지 않고 마치 인생 80은 산 듯한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또래와 같은 반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한참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미 레니는 자신의 죽음을 앞에 두고 마주 보는 나이 많은 어른 같은 생각까지 이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80 이상의 노인들과 같은 반을 선택했고, 거기서 마고와 같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마고와 레니는 둘이 합친 나이 백 년을 백 개의 그림으로 그려보자고 약속했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 그림과 함께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