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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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앞부분을 읽다가 막혀서 한참 기다렸다. 어쩌면 내가 일반적으로 읽었던 소설보다 훨씬 무거운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생각보다 속도가 나지 않는 소설은 마음을 조금 다잡고 다시 읽기 시작해야 했다. 한 주 정도 다른 책들로 마음을 추스린 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는 끝까지 떼지 않고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하얼빈은 그 무게만큼 마음을 짖눌렀다. 덮으면서 이것이 ‘안중근의 진짜 생일까’ 궁금했다. 우리가 아는 안중근은 그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였고, 대단한 존경을 받는 위인이다. 하지만 소설 하얼빈 속의 안중근은 늘 성공한 사람도 아니었고, 위대하다기보다는 용감한 인물이라는 쪽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아주 기초적인 안중근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고, 어쩌면 어디에도 정답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위인전에서 만나는 위인은 인간적인 고뇌가 아예 없는 사람일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마음의 울림보다는 그 인물이 이루어낸 성과, 업적 같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도록 만든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종교적인 인물 이외에 그 사람의 마음과 성품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안중근이 이토를 죽이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지금처럼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열아홉 살 청년 신돌석은 경북의 바닷가 영해에서 백여 명의 민병으로 일어섰다. 신돌석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 삼척, 강릉, 양양을 아우르며 북상했고 청송으로 진격할 때는 군세가 천에 달했다. 날이 추워지고 군량이 떨어지자 봄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신돌석은 병을 해산했다. 신돌석은 부하의 집에 몸을 숨기고 봄을 기다리다가, 배신한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이렇게 독립운동에 자신을 다 바쳐서 앞서나간 신돌석 같은 사람들은 부하들의 배신에 의해 죽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반도의 면면촌촌에서 죽음을 잇대면서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의병부대들을 안중근은 생각했다. 계통이 없고 대열이 없는 복받침이었다. 한없는 죽음이었고 한이 없을 죽음이었지만, 국권회복은 죽음을 잇대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산속에서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그때 죽였어야 옳았던가를 안중근은 스스로 물었다. 안중근은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안중근은 의병대의 참모중장의 계급을 받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교들이 데려온 포로 세 명을 돌려보냈다. 포로가 되었다는 일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말했고, 소총까지 돌려주었다. 하지만 이 포로들이 안중근 부대의 위치와 병력 규모를 일본군에 알렸고, 결국 쫓아온 일본군에 의해 부대원들은 서로 싸우고 결국 흩어지게 된다. 


안중근은 내내 이토 히로부미의 소식을 신문에서 볼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얼굴이 보이는지 살피고, 그가 어디 가는지 기억한다. 이미 그 때부터 안중근은 마음으로부터 결심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쳐부수어서 차지했고, 대련을 발판으로 하얼빈으로 진출했다. 하얼빈역 플랫폼은 내가 이토를 쏘기에 알맞은 자리고, 이토가 죽기에 알맞은 자리다.

나는 이토가 온 철도를 거슬러 가고 있다. 대련은 이토의 세상이다. 대련은 내가 말하기에 편안한 자리이고 내가 죽기에도 알맞은 자리이다.

안중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많이 궁금했다. 이 내용들이 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니면 허구가 섞여 있는지도. 그리고, 안중근의 이토에 대한 이 고민들을 통해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엄청난 업적의 위인, 하지만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하기 전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지 않는가.


작가 김훈이 했던 기자 간담회 기사를 읽으면서 궁금했던 많은 것들에 더해 또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청년 안중근의 고뇌, 에너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전, 블라디보스톡의 허름한 술집에서 우덕순을 만나 “이토를 죽이러 가자”고 말했다. 서른 살이 넘은 젊은 이들이 왜 이토를 죽여야 하는지, 그 대의명분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토론하지 않았다. 총알 개수나 자금에 관한 논의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너무 놀라웠다. 그들의 고뇌는 무거웠지만 처신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얼마나 아름다운 대목인가. 이 소설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만남과 계획은 참 가벼웠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을 듯 싶은 계획들을 둘은 크게 걱정하거나, 망설이지도 않았다. 안중근은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목적으로 이토를 죽였다고 말했다. 한국 인민을 파리처럼 죽이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힌 이토를 죽인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안중근의 마지막 죽음 장면은 거대한 파도 같이 충격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이 부분을 이렇게 담담히 써내려가는 것이 작가 김훈이어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할말이 더 있는가?

-없다. 다만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게 해다오.

구리하라가 말했다.

-허락하지 않는다. 

안중근은 마지막에 동양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게 해달라고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고, 가족들이 시신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순 감옥에 묻힘으로 생을 마감했다. 

소설 속에서 안중근은 거대한 위인이라기보다, 이토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식민지 우리나라의 한 참모중장으로 그냥 약한 한국 민중의 한 사람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 이런 표현이 적합한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은 또 다른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생각했던 일에 너무도 단순하게 다가가서 그대로 해나가는 안중근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새로웠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다. 또, 작가가 말한 것처럼 안중근의 청춘, 영혼, 생명력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책을 덮으면서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둬 놓을 수 없다”고 말한 작가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나는 안중근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시 또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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