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해방은 어떤 해방일까,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일까 궁금했다. 자신으로부터의 해방 아니면 어떤 압력으로부터의 탈출일까?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으면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미 해방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82세의 나이에 전봇대에 부딪혀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고, 그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그리고 아버지의 유골을 아버지가 살아왔던 곳곳에 뿌리는 것으로 그 장례를 끝내는 딸의 이야기다.
빨치산으로, 사회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가 겪은 삶의 무게를 딸도 다른 색깔로 겪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물이 흘렀다. 다 읽고는 꼭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야 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가슴이 먹먹했고. 소설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독자인 나의 느낌은 분명 평론가와는 다를 것이다. 다만 읽어내려갈 때 어느 지점에서 멈춰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는 단락들이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시 읽을 때 결국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면서 자주 경험하기 어려운 탓에 책을 덮는 것이 아쉬웠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나만 알고, 나만 공감하고 싶은 탓이다.
90년대 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을 때 이런 신세계가 도대체 어디에 있었기에 나는 바라본 적도 없었는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빨치산 이야기,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의 투쟁은 마음을 온통 흔들어댔다.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군부의 독재가 끝나면, 김대중과 같이 민주화 투쟁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 나라의 정권을 잡으면 완전히 바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노태우와, 김영삼을 지나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 아무리 많이 달라졌어도 세상이 뒤바뀌지는 않았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꿈꾸었던 세상은 절대로 오시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을 때의 기대는 거대한 보수의 산에 부딪혀 대통령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다시 독재의 거대한 산 같았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터무니없는 정치를 했을 때도 민주화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 내걸 수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80년대, 90년대 민주화를 위한 투쟁 이후,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많은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현실에 한없이 실망하지 않았던가. 아니, 나라의 정치는 크게 변하지 않지만, 그 투쟁에 한 가운데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변절했던가? 북한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은 정치인이 되어서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다. 현실은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