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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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는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내가 여자이기 때문일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많은 반대 의견들이 심한 공격을 감행한다. 바로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매화나무 아래’ 이야기처럼 말이다. 인터넷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 무기명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참 매력적인 발전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도구다. 대 놓고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이 댓글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쓰여지고, 이로 인한 싸움이 순식간에 번지니 말이다.

 

책의 제목 ‘우리가 쓴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나, 아니면 작은 조연이라도 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이야기이고, 우리 어머니나 누나, 친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흔한 사건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우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족, 아니면 친구, 혹은 주변사람 모두일까?

 

‘매화나무 아래’를 읽으면서 노년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했다. 치매로 요양원에 있는 큰언니를 만나는 막내 동생, 자주 찾아오고 돌보는 손자 승훈이와 약간 무심한 가족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 할머니가 쓰러져서 의식도 없고, 호흡기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손자 승훈이는 할머니가 살아만 계시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못하고 저렇게 누워만 있는게 대채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이모할머니에게 조카 승훈이가 묻는다.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걸까요?

언니의 짐을 챙기러 요양원에 간 동생은 건물 밖에 있는 매화나무의 겨울눈을 보면서 생각한다. ‘꽃이 눈이고, 눈이 꽃이다. 겨울이 봄이고 봄이 겨울이다.’ 인생에서 겨울을 지나야 봄을 만나고, 또 봄을 지나면 다시 겨울을 맞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의미있는 삶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나도 주인공처럼 "나도 이제야 알았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남오빠에게’속의 현남 오빠는 어떤 인물일까? 제목을 보고 읽기 시작할 때는 ' 사랑하는 남자인데, 헤어져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편지를 쓰는 것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전되면서 만나는 현남 오빠는 참 대단한 사람었다. 여자를 하나의 자신의 가방 같이 생각한다고 해야 할까?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야하고, 그 안에 담는 것도 스스로 다 정해야 하는 사람. 나 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없이 가방안에 무엇도 넣으면 안된다. 심지어 그 가방을 아끼는 사람 정도일 뿐. 주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현남 오빠의 청혼도 가관이었다. ”나 꽃다발 들고 무릎 꿇고 그런 로맨틱한 거 못해. 알지? 그냥 용건만 말할게. 결혼하자.“ 여자들은 남자들의 이런 청혼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속이 부글거렸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주인공의 거절에 현남 오빠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마지막 주인공의 말에 속이 시원해졌다. 자세한 말은 생략. 글 속에서 보는 것이 가장 실감날테니. 나를 마음대로 다 쥐락펴락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통쾌한지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의 표정을 상상해보라. 그냥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다 시원하다.

 

‘오로라의 밤’을 읽으며 마치 내가 소설 안에 들어가 있는 줄 착각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꿈꾸는 여행지 중 1순위는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였다. 물론 노르웨이나, 아이슬란드, 핀란드 등 여러 나라 중 아직 정하지는 못했지만 마음속 1순위는 옐로나이프였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옐로나이프로의 여행을 만났을 때 마치 나의 생각을 발견했다는 것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나쁜 이야기가 있으면 여행을 갔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은 속좁은 마음 탓이다. 주인공의 직업도 나와 같았고, 내 자식의 아이들, 즉 손자 손녀를 노년에 돌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똑같았다. ’이 소설 꼭 내가 쓴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만큼 말이다.

 

함께 여행 갈 사람을 생각할 때 떠오른 사람은 딸과, 팔순의 시어미니. 주인공은 누구와 같이 갔을까? 팔순의 시어머니와 함께 한 오로라 여행.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친정 엄마와는 다르지만 시어머니와 편하게 함께 사는 주인공의 삶도 신기하다. 오로라를 보면서 비는 소원에 손주 절대 안보겠다고 말하며 엉엉 우는 '나',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고, 곱지 않아도 오래 사는게 소원이라는 팔순의 시어머니를 보면서 마음 속 뭉친 것이 확 풀렸다. 나이든 여자, 50이 넘어간 여자로 사는게 얼마나 이전과 다른지 요즘 부쩍 많이 느끼는 탓이다.

 


오라라를 보고 온 것은 어머니와 나인데 지혜의 인생이 달라졌다. 달라진 뻔했던 것이 달라지지 않는 방향으로 달라졌고 그것은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성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과 그 일들이 나와 지혜에게 가져다 줄 변화를 생각한다. 나와 어머니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한다.

 

가을밤, 서울에서 지혜와 내가 본 것은 정말 오로라가 맞을까.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와 함께 올려 보낸 소원들은 우주 어디쯤에 가 있을까. 어떤 빛과 몸짓으로 우리에게 돌아올까.

(오로라의 밤 중에서)


 

작품속에서 만나는 많은 여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내 친구이고, 가족의 모습이다. 어쩌면 남자들은 여자의 섬세한 심리를 이해하기 어렵고, 여자들은 남자들의 감정변화를 읽어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속의 여자들이 겪는 많은 사건들이 문득 문득 만났던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라서 그런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끔 가슴을 쓸어내렸다.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세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글을 읽고 나서 나의 현재와, 미래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나의 노년을 살아내야 할지, 지금의 어정쩡한 이 나이를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도 내 삶의 그림들을 잘 그려낼 수 있을지 그런 것들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런 나의 마음이 어떤 빛과 몸짓으로 다시 돌아올지 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다려야겠다.

주방 선반에서 약상자를 꺼냈다. 석 달이 조금 안 되는 분량의 혈압약 봉지들, 안약통 네 개, 요즘 자꾸 몸이 간지러워서 처방받은 연고, 봄엔가 손을 데어 샀던 화상 연고, 소화제와 진통제, 밴드, 소독약 같은 비상약, 그리고 일본 파스, 오래된 안약 두 통과 화상 연고는 버려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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