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를 피하는 법
리처드 로퍼 지음, 진영인 옮김 / 민음사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약 노년에 혼자 있다가 이 책의 이야기처럼 고독사를 맞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어떻게 죽게 될까? 아니, 어쩌면 내가 죽는 순간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상황일테니, 나의 마지막을 예상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어떤 형태든, 어떤 상황이든 죽음이 두려운 것은 인간에게는 모두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영국 소설을 읽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낯선 문화를 마주치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많은 고독사가 있다는 것도 그랬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도 비슷해져 가고 있는데 내 주변에 자주 일어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암’으로 투병할 때도 그렇게 느꼈다. ‘왜 주변에 아무도 암에 걸렸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 나만 걸린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졌고, 뉴스에 나오는 5명 중의 1명, 이런 통계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책의 맨 앞에 공중보건법 문구가 나온다. 사망자가 있을 때, 누가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면 당국이 시신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앤드루는 이십대 초반에 구청에서 행정직 자리를 얻어서 일하다가 갑자기 그 자리가 없어져서 다른 곳의 행정직으로 옮겨가게 된다. 면접을 치르는 도중 상사의 가족에 대한 질문에 잘못 대답해서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아내도 있다고 대답하게 된다. 직장에서 내내 가정을 여는 파티를 돌아가면서 하자고 할 때 앤드루는 난감한 상황을 겪는다. 왜 직장 사람들과 함께 파티를 해야 할까? 읽으면서 그런 파티 문화, 또 직장과 사생활이 연결되는 문화도 낯설었다. 앤드루의 잘못된 대답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랫동안 앤드루를 혼자 있게 한 이유와 관련되어서 말이다.

앤드루는 구청에서 충분히 관심받지 못한 사람들이 죽었을 때 처리하는 일을 한다.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나 미지불 청구서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이 발견되면 그 집을 찾아서 누군가 연락할 사람이 있는지 여러 가지 실마리를 찾고, 장례를 치를만한 돈이 될만한 것을 찾아 장례비를 마련하는 일을 하는 직원이다. 사람들이 선뜻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오래도록 발견되지 않은 죽음이라면 냄새나, 집의 환경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역한 냄새만 나면 다행이겠지만 구더기나, 음식 썩은 냄새 등 구역질이 날만한 환경을 맞닥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앤드루는 이렇게 집안 정리만 하면 끝나는 업무이지만, 스스로 죽은 이의 마지막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도 한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앤드루와 함께 같이 일을 할 페기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진전된다. 앤드루와 페기는 이야기도 잘 통하고, 생각도 잘 통한다. 하지만 페기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앤드루도 거짓말이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둘은 서로 가까워지다가, 벽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페기의 남편이 알코올 중독으로 결국 가정이 깨지게 되고, 앤드루의 숨겨진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변하면서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소설에서 두 사람의 로맨스가 주축을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집을 찾아서 일하면서 마지막 장례까지 치루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현대의 고독사 문제, 그리고 앤드루가 가진 상처 등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앤드루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그런 사람들이 공유하는 정보가 진실되지 않기 때문에 관계가 한정적인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그런 온라인 속의 관계가 실제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도리어 현실에서 도움을 주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누나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 때문에 끊임없이 괴롭히는 매형 칼, 관계를 잘 회복하지 못하고 떨어져 지내다가 죽은 누나, 그리고 사랑해서 함께 살다가 죽음을 맞은 다이앤 등 앤드루에게는 극복해야 할 사람의 흔적이 너무나 많다. 그 속에서 정상적이지 못하게 살아가던 앤드루의 마음을 만지는 것은 역시 사랑하는 페기였다.

“예전에 편지를 썼어. 우리가 사귀자마자 바로 썼지. 하지만 너무 겁이 나서 편지를 주지 못했어. 네가 질색할 것 같았거든. 편지 시작부터 시 한 편을 써놨으니. 넌 정말 곤경에서 벗어난 셈이지. 편지는 대책 없이 낭만적인 감상이 가득해서 아마 읽었다면 넌 목청이 터져라 웃었을 거야. 분명해. 하지만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어. 우리가 서로를 처음으로 껴안은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영원히 변해 버렸다는 걸 알고 있다고 편지에 썼으니까. 그때까지 나는 미처 몰랐어. 삶은 때로 무척 경이롭고 아름다운 만큼 단순할 수 있다는 걸. 네가 떠난 뒤 내가 이 사실을 기억하길 바랄 뿐이야.”

앤드루는 말을 멈추고 코트 소매로 눈을 닦아야 했다. 다시 한번 손으로 묘비를 어루만졌다. 앤드루는 그곳에 머물렀다. 이제는 입을 다문 채 그를 덮치는 순수하고 기이하게도 즐거운 고통을 느끼며 아픈 만큼 그가 받아들여야 할 감정이었다. 봄이 오기 전의 겨울처럼. 얼음 같은 고통이 심장을 치교하기 전에 심장을 얼리고 깨듯.

<고독사를 피하는 법> 중에서

페기로 인해 세상과 마주하게 된 앤드루는 벌써 한참 전에 죽었지만 보내지 못했던 다이앤의 묘지를 찾아가게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아 처참히 무너지지만, 동시에 사람으로 인해 회복되고 살아나게 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인간이 혼자 살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 하지만 현대는 점점 더 혼자 살고, 혼밥을 하고, 혼자 모든 일을 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시대가 점점 더 지속될수록 고독사는 증가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혼자’라는 것은 사람에게서 겪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는 것에서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그 어떤 것도 받을 수 없는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앤드루가 페기와 함께 마지막에 나눈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너무 파고들진 않을께요. 그냥……. 솔직히, 이 노부인은 진짜 혼자서 말년을 보낸 또 한 명의 사람인 거죠. 분명 좋은 사람, 평범한 사람인데도, 직계 친족을 찾으면 또 전형적인 말이 나올 게 뻔해요. ‘어머, 세상에. 부끄럽게도 우린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답니다. 연락처를 잃어버리고 어쩌고저쩌고.’ 이런 일은 그냥 뒷말 나오는 사건 같은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에게 ‘미안합니다. 운이 나쁘군요. 우린 당신들같이 불쌍하고 외로운 멍청이들을 도울 시도조차 안할건데요.’라고 말하는 셈인데, 이게 정말 모두가 만족스러운 상황일까요? 적어도 누군가와 차 한잔 하면서 희한한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이?"

'고독사를 피하는 법' 중에서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 페기는 죽은 노인의 친구를 찾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녀의 장례식에 3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참석하게 된다. 신부와 앤드루만 참석했던 많은 노인들의 고독사 장례식과 다르게 말이다. 앤드루와 페기는 많은 과정을 통해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였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 죽고 못사는 사랑 같은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함께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많은 순간, 많은 사람들이 원한 것은 나를 보아주고, 지지해주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함께 해주는 것, 그런 것들이 아닐까. 마지막 순간, 나의 죽음을 슬퍼해주는 누군가의 눈물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외롭게 나 혼자 방치되지 않고, 고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손내밀 수 있는 용기가 페기나 앤드루처럼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라게 된다. 따뜻한 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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