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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푸른 눈
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토리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은 1960년대 중후반 이후 발흥한 흑인 민족주의가 영향력을 크게 미치던 자기 장 안에서 쓰여지고 출판되고 읽힌 작품이다. 모리슨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흑인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는 구호를 모토로 한 블랙 파워 운동을 그 배경으로 한다. 마틴 루터 킹을 필두로 한 1960년대의 흑인 민족주의가 196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약간 더 전투적인 모드로 변하게 되는데, 점차 체계를 갖추어 가는 흑인 민족주의의 양날개는 바로 블랙 파워 운동과 흑인 미학이었다. 주로 흑인남성 주도로 이루어지던 흑인미학을 확립하고자 하던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모리슨을 흑인문학의 여성 총아로 떠오르게 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눈 여겨볼 점은 이 소설에서 모리슨이 흑인공동체 내부에서도 가장 취약한 존재인 아동이자 아동 중에서도 더 약한 쪽인 소녀의 경험에서 정말로 "흑인은 아름다운가"?를 질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블랙 파워 운동이 제시한 구호를 흑인소녀의 경험에서 재검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흑인 소녀 피콜라의 경험과 피콜라네 가족사를 통해 보자면, 이 블랙 파워 운동의 모토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드러낸다.
다른 한편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점은 피콜라의 또래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클로디아가 20년이 지나서야 어린 시절을 다시 기억하면서, 진정한 흑인해방, 진정한 흑인의 힘(Black Power)을 성취하기 위해서 흑인공동체에 필요한 점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피콜라의 경험을 흑인공동체의 관점에서 다시 구성하는 클로디아의 서사는 피콜라와 같은 어린 소녀에게 일어난 폭력을 집단적으로 묵인했던 흑인공동체의 자기성찰을 촉구하는 서사다. 또한, 클로디아의 서사는 1970년대 들어 흑인여성의 목소리가 흑인문학진영에서 발흥하게 되는 과정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흑인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양자가 서로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1960년대 후반, 1970년대, 1980년대 초반에 출판된 흑인여성작가들의 수많은 작품과 책들이 흑인민족주의자 남성들의 숱한 공격과 비난에 시달렸던 것과 달리, <가장 푸른눈>은 이 남성들에게조차 찬사를 받았다. 이 점은 토니 모리슨이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을 교섭하면서도 미학성을 담아내는 서사전략을 꼼꼼히 다시 볼 것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