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별자리와 신화 - 고구려 하늘에 새긴 천공의 유토피아
김일권 지음 / 사계절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2008년은 ‘세계 천문의 해’다. 갈릴레오가 천체 망원경을 사용해 우주를 관측한지 400년이 지난 올해에 UN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400년 전 인간은 하늘을 볼 때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이용하게 되어 자연의 신비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에도 오랫동안 하늘의 천체를 관찰해 왔다. 그냥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별들의 움직임을 가지고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리 오랜 세월 하늘과 그곳에 있는 천체를 관찰했을까.

중국의 저명한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샤오위엔의 <별과 우주의 문화사>에 보면 <역경,易經>에 표현된 천문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천문이란 하늘의 무늬를 뜻하고, 인문이란 사람의 무늬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늘의 무늬를 보고는 먼저 전쟁의 승부나 농업의 풍흉에 대해서 판단했고, 수해나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 제왕의 안위 등 군사적 분야의 일을 예언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었다. 즉 중국에서 천문학이란 제왕을 위한 학문이었다. 동양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를 쓴 사마천은 태사령이었다. 태사령은 천문, 달력, 기록을 맡아 처리하는 부서의 장관이었다. 이렇듯 하늘을 관측하는 직업은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전에 생겨났다. 그만큼 왕조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 천문학은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반도에서도 중국과 같은 의미로 고대이래로 천문학을 중요시했다. 삼국사기 본기에 보면 수많은 천문현상이 일어났음을 적고 있다. 즉 삼국시대에도 별을 관측했다는 증거이다. 그 증거가 글자로만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림으로도 남아 후대에 그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 <고구려 별자리와 신화>(사계절.2008년)에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있는 별자리를 보고, 이를 해석하여 그 고구려인의 세계관과 사상 그리고 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무덤 속에 별자리를 그린다는 생각은 진시황 때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시황의 무덤 천장에 천문을 그렸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 실제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벽화의 별자리 그림은 오히려 고구려에 와서 꽃을 피웠다.

 

진파리 4호분(590년) 벽화는 고구려 별자리 그림에서도 백미에 속한다고 한다. “다른 벽화무덤이 벽면을 따라 방위별 천문도를 그린 것인데 비해 이 무덤은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 하여 전체 하늘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별자리를 한 장의 천정 판석에 그렸다.”(35쪽)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특히 천문도 중앙에는 북극성좌와 북두칠성을 그렸으며. 둘레에는 동양의 별자리를 상징하는 28수를 둥근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중국의 경우보다 훨씬 빠른 것이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천문기술이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이런 증거는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이를 우리가 더욱 발전시켰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고구려의 천문기술이 중국보다 빨랐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고구려 전체의 고분 중 벽화가 그려진 것은 총 107개이다. 이중에서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고분은 총 25기에 달한다. 이는 고구려가 존재하던 시기의 중국의 경우는 16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고구려의 천문학이 오히려 중국보다 우월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고구려의 별자리 그림에서 특이한 점은 “별자리와 함께 신화적인 도상이 발달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덕흥리 고분 벽화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견우와 직녀상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또 천왕지신총의 서수(瑞獸, 상서로운 짐승)그림은 도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집안지역의 오회분 4호묘에서는 사신도에 더하여 중앙 천장부에 황룡도까지 그려 넣었다. 그래서 오신도 벽화가 되었는데, 중앙에 황룡을 그렸다는 것은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오신도는 중국의 벽화묘에는 없는 양식이다. 이는 고구려적 고유성이 반영된 문화양식으로 판단하고 있다.

 

고구려의 천문 연구 전통은 고려로 이어진다. 고려의 벽화무덤은 총 22기이고, 그중 17기에 천문도가 그려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조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조선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만이 고구려의 별자리에 대한 기억으로 남겨졌을 뿐이다. 고구려의 천문도는 일본으로도 전해졌다. 1998년 발견된 기토라 고분의 천장에는 금박 전천천문도가 그려져 있었다. 일본 전역이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8세기 전후에 전천천문도를 그렸다는 것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과 문명의 수준이 그만큼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분에 그려진 별자리를 분석한 결과, 별을 관측한 지역이 평양이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던 일본 언론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저자 김일권은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우리 역사에 있어서 천문연구 분야의 개척자라고 한다.  “이제 겨우 고구려의 전통 별자리를 찾아내어 복원하는 중에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등장하였던 더 많은 하늘의 역사를 되살려 내는 작업이 앞으로 주어져 있다.”라고 말하며 이 책을 끝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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