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이게 바로 누와르 / 나서영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지. 서울에는 이렇게 큰 가게가 많아. 사람이 많으니까. 또 가게가 크니까 만물상이야. 없는게 없어. 작은 가게에 없는 것도 많고 있는 것은 당연히 있단 말이야. 큰 가게는 주둥이가 큰 황소개구리야. 닥치는 대로 잡아먹지. 황소개구리가 득실대는 저수지는 곧 씨가 마르게 돼. 송사리고 개구리고 붕어고 잉어고 전부 먹힌단 말이야. 아가리가 너무 크니깐 다 처먹어버린단 말이지. 아마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거야. 그냥 흘려들어."

 

-P.71-

 

1.

 

제가 어릴적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었습니다. 맛 하나로 동네를 평정한 빵집 아저씨는, 인심도 후해 어린 학생들에게는 덤으로 왕슈 하나씩을 더 넣어 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는 프랜차이저 빵집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할인혜택을 통한 저렴한 가격은 물론 깨끗하고 정돈된 프랜차이저 빵집들은 처음엔 고전하나 싶더니 점점 자리를 잡아가며 기존의 빵집을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아저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빵집의 상호를 유명 프랜차이저의 메이커로 바꾸었습니다.

 

<이게 바로 누와르>는 지난번 포스팅한 <알로마노 달의 여행>의 작가 나서영의 작품입니다. 개성있는 주인공들이 장식한 표지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들었는데요. 부조리한 현실 세태를 풍자하며 한편의 멋진 누와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지금도 너무 흔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들의 비극이 더욱 슬프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덮은 뒤 다시 본 표지에서 그들의 모습은 처음과 달리 씁쓸함이 묻어나 보였습니다.



비정규직들은 출근 시간을 30분 앞당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업무 준비 시간이라는 명분이 제시되었지만 천 명을 웃도는 사람들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물론 '30분쯤이야,' 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꾹 눌러 삼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천 명의 30분은 하루 3만 분이었다. 용진마트가 하루에 3만 분을 착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 큰 문제는 출근 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시간마저 늦춰졌는데 적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추가근무를 강요당했다.

 

-P.134-

2.

 

지역의 작은 도시 용주군에 벤츠를 모는 심씨형제가 발을 디딥니다. 형인 심상문은 군수선거에 출마하며 '용진마트'라는 거대한 비즈니스 공약을 내세우는데요.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대형마트가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는 생각하여 심상문을 지지하고, 자연스레 그는 용주군의 군수가 됩니다. 그리고 용진마트의 대표는 심상문의 동생인 심상만이 맡게 됩니다. 마을은 주민들의 기대처럼 번영해 나갑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용진마트'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용진마트'가 커질수록 피해자들은 늘어만 갑니다.

 

사실 과거 용주군의 상권을 잡고있던것은 마을의 번영회 역활을 하는 한우리회 였습니다. 한우리회의 대표 이권하와 그의 형제로 표현되는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다함께 잘살아 보자는 상생의 가치를 실현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상생이 일반적인 살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마 '용진마트'가 들어선 뒤 부터인것 같습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는 심씨형제는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그것을 교묘하게 정당화 시킵니다. 정치와 경제가 만나며 법마저 자본에 예속되 버린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이권하와 형제들은 용주군의 시민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싸움을 시작합니다.
 

 

경찰은 황당하게도 용역의 편이었다. 아무리 공정성을 상실했다고는 하지만 용주군의 경찰들이고 용주군의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시위 세력을 불법점거 농성자로 규정하고 일을 처리했다. 또 용역은 정당한 권리사업자로 용진마트 측에 용역 의뢰를 받은 것으로 정상 참작되었다. 경찰 스스로도 조금 황당한 처리였다. 누가 봐도 그렇게까지 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법은 자본의 편이었다.

 

-P.182-

 

3.

 

어두운 골목길, 이슬 비가 내리는 인적이 거의 없는 스산한 거리, 가로 등 밑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남자, 그가 피워대는 자욱한 담배 연기. 누와르라는 단어를 듣고 가장먼저 떠오르는 요소들입니다. 여기에 '부패' '배반' '냉소주의' '환멸' 등이 버무려지면 하나의 멋진 누와르 영화가 만들어지지요. 누와르의 끝은 대체로 비극적입니다. 억울하게 죽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 관객은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뒤 관객은 곧 주인공을 잊고, 자신의 일상적인 삶으로 돌아갑니다. 너무나 쉽게 잊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 동갑내기 작가는 열가지 궁금증을 내세웠습니다. 명확한 답은 없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게 돌아가고 있다는것은 분명합니다. 책을 읽은 나는 과연 저가상품과, 편안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세 상인들에게 발길을 돌릴수 있을까요. 쉽게 가까운 이들의 이야기를 또 쉽게 잊어먹을까 걱정이 됩니다. 작가의 마지막 궁금증 나는 천국에 갈수있을까. 이말이 자꾸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