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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쓸모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5월
평점 :
우리는 오랜 기간 여행 없는 생활에 갖혀있었다. 언제 다시 떠나 볼 수 있을까 갈망하며 아주 잠깐의 짧은 여행도 일상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여행의 길이 활짝 열렸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은 여행의 절실함을 가져왔고, 그 절실함은 여행의 의미를 깊게 새기게 되었다.
책의 저자 정여울 작가는 여행 베스트셀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으로 잘 알려져있다. 10여년 전 신혼여행을 앞두고 여행지가 일부 겹쳐서 몇 번을 읽어보고 갔던 기억이 있다. 이번 『여행의 쓸모』는 여행을 삶의 일부로 여겼던 작가가 그 동안 여행을 떠나지 못해 답답했던 시간동안 다시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행에 대한 간절했던 마음을 여행을 통해 글로 담아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다시 떠날 수 있게 된 작가는 서둘러 티켓을 끊고,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은 긴 기다림 만큼 황홀하다. 책 곳곳에는 저자가 여행지에서 느끼는 순간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는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을 비롯해 미국의 뉴욕, 중남미의 도시들 곳곳을 여행하면서 여행의 설렘을 기록하고 있다. 중간 중간 이승원 사진작가의 사진들은 여행의 설렘을 더 실감나게 한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여행에서 돌아와 그 여행을 되새기는 데 있다고 한다. 여행 후 돌아온 일상에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생활과 다시 마주할 때 불현듯 떠오르는 여행의 순간들은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다음 여행을 다시 떠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여행을 하며 만나게 되는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이런 낯선 것들이 여행에서는 흥미로움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그 곳에 있는 나 자신도 그들에게는 낯선 존재일 것이고 그 낯선 존재끼리의 만남은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낯선 것을 통해 우물 밖으로 나아가는 느낌, 알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 어쩌면 여행을 놓을 수 없도록 짜릿함을 주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남으로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잘 살아가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결국 현실에서 영원히 벗어나 살 수는 없다.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것도 다시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예측불가함은 우리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삶을 대하는 경험을 하게하고,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행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면, 아주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면, 다시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면 그 여행은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운 여행이다.
다시 떠날 수 있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다시 떠나기를 시작한 내 경험을 독자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그리웠다. 멀리 떠나갈 수 있는 자유보다 더 그리운 것은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다가감, 거리낌 없는 공감, 마침내 친구가 된 듯한 따스한 느낌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여행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쁘다. 다시 떠날 수 있어서, 그 떠남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한없이 기쁘다. 13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