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죽음과 사라져간 것들에 대해, 우리는 인내의 시간을 두고 품위 있게 슬프고 싶었다. 농밀하게 슬픔을 나누고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진짜 슬픔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품위 있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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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다채로운 맛과 향으로 구성된 서랍장이라면 성곤은 계속해서 한가지 서랍만 열고 있었다. 분노, 짜증, 울분, 격분, 우울, 좌절이 가득 담긴 서랍, 어느새 그는 다른서랍을 여는 방법을 망각했다. 참다운 기쁨, 단어 안에 담아놓기 힘들 정도로 충만한 감정이 담긴 서랍은 꾹 닫혀있었고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흐드러진 봄꽃이 길을 따라 피어있었다. 언제 꽃이 폈는지도 몰랐는데 계절은 이미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못한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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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곤이 받아쳤다.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고 나자 성곤은남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좌절감을 짜증으로 표현했고 그가 짓는 표정은 단 세가지, 화를 내거나, 화를 참거나, 화를 참으며 억지로 미소 짓는 표정으로 압축됐다. 나쁜 감정의 폭발은 유독 집에서 도드라졌다. 

은 값비싼 무언가라도 잃는 것처럼 입에 좋은 말을 담는걸 아까워하듯 피했다. 차라리 이런 종류의 표현이 더 익숙했다.
- 질리게 못나서 미안하다 됐냐.
그뒤로 좋은 말이 오갈 리 없다는 걸 뻔히 짐작하면서도 성곤은 일단 뱉고 봤다.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조차 진심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런 영혼 없는 말이 자신과 타인의 영혼에 해를 입히리라는 것을 전부 알면서도성곤은 입에서 거침없이 뿜어져나오는 말을 참아내지못했다. 좋은 건 쉬워도 하기 싫고 나쁜 건 결과가 뻔히보여도 일단 저지르게 되는 게 삶의 불가사의였다.
란희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성곤의 존재 자체가자신에게 너무나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은별거 상태에 돌입했다.
성곤은 마음이 아팠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팠다. 그리고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무너져 붕괴하는순간에도 그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용기가 없어 그냥사납게 집을 박차고 나오는 걸 택한 것이다. 어리숙하고미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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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곤이 이 일에서 배운 건 개개인의 고뇌와 상관없이 일단 돌아가고 보는 생의 사이클이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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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애당초 나는 지금껏 대체 무엇을 기다려왔다는 건가?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정확히 알고나 있었을까?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명확해지기를 그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게 전부인 건 아닐까? 나무상자 하나에 들어간 더 작은나무상자, 그 나무상자에 들어간 더 작은 상자. 끝없이 정묘하게 이어지는 세공품, 상자는 점점 작아진다-그리고 또한 그안에 담겨 있을 것도.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껏 사십몇 년을살아온 인생의 실상이 아닐까? - P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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