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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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책과 마주한 내가 알고 있는 ‘루쉰’은 중국작가이자 사상가라는 것뿐이었다.  

책 속 가득한 그림과 해설, 왜 그는 글이 아닌 그림을 그렸을까?
미술 쪽에는 무지한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루쉰’이라는 사람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루쉰은 내가 알고 있듯이 작가의 삶을 살았다.
글을 쓰면서 다량의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고 책을 통해 알 수 있듯 미술 방면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럽과 일본의 목판화를 중국에 소개하는 동시에 목판화 강습회 등을 열어 중국 근대 판화운동의 기초를 세우기도 했다.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면서도 중국의 현대 미술사에도 커다란 자취를 남긴 루쉰.
나는 오래전 읽었던 루쉰의 소설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글이든, 그림이든 그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듣고 싶었기에.

내가 유일하게 아는 루쉰의 작품 <아큐정전>은 중국인들의 가난하고 자의식 없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책 속 아큐라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가난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처럼 아큐 역시 그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웅크린 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나는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왜 사람들이 루쉰을 두고 중국근대 문학의 선구자라고 말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루쉰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가보지 못한 길, 접해보지 못한 경험은 누구나 두렵고 어려운 것이며 스스로 극복해야만 되는 삶의 굴레라는 것이 아닐는지 조심스레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아큐의 죽음을 통해 무능력하고 시대에 순응하며 살았던 중국인들의 안타까운 삶을 소설을 통해 바꾸고 싶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아큐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을 뛰어넘어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랐을 것 같았다.

루쉰의 글을 통해서 그에 대한 짧은 이해를 경험한 나는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책을 통해 그에게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했다는 그의 또 다른 재능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가 그린 수묵화, 사용하던 책상에 새긴 전각, 새나 식물을 그려 엮은 식물표본책 등을 통해 그의 재능을 조심스레 엿볼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소설이나 글에서는 보지 못했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벗에게 전했던 편지 속에 묻어나 있는 생활의 궁핍함이나 지역에 따라 다른 민속 문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은 그의 관심사를 파악하기에도 충분했던 것 같다.

‘그림은 노신의 삶과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코드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노신의 그림을 알아야만 ‘인간 노신’을 보다 입체적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글과 다른 언어인 ‘그림’에 대한 이해는 루쉰을 알아 가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은 접근이지만 말이다.
루쉰의 그림과 마주하면서 나는 그가 지닌 재능이 부러웠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기념관에 가서 다양한 업적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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