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을 죽여라
구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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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니 ‘게으름’이 두 배가 되는 것 같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순전히 날씨가 춥다는 변명으로 대체하고 있으니.

<게으름을 죽여라>는 책을 마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책제목 때문이었다. ‘게으름을 죽이는 방법’등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가장 컸던 듯하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예전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집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장편소설만 읽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소재들을 풀어헤친 단편들의 매력을 알게 된 듯, 소설집만 골라 읽는 느낌이다.

각설하고, 
처음 책을 펼친 후 덮는 끝까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검은색’이었다.
아마도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자살, 죽음 등의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쓰기만 할 뿐 남의 글을 읽지는 않았다.
쓰기만도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었다. 사람들은 외로웠고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을 간절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독평사>는 우연히 독평사가 된 한 여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의뢰인의 글을 읽고 인터넷 상에서 만나 평을 한다. 그리고 의뢰인의 글에 대한 평가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글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사람들.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글을 통해 만난 의뢰인과 독평사일 뿐이다.

독평사인 그녀는 의뢰인의 글들에 특별한 애정이 없다. 그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대화창에서 의뢰인의 글을 이야기한다.
그들의 불안한 만남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평가하고 단정지어버리는 지금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뜻하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주고, 원하지 않게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과 닮아있다.

독평사를 통해 자신의 글과 새롭게 마주하게 된 의뢰인은 화를 내고, 결국 대화창을 나가버린다. 얼마 후 의뢰인의 친구가 독평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그녀의 팔과 다리가 부러지게 만든다. 남의 글을 읽고 상처를 준 대가는 삭발에다 팔다리 하나씩 부러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평사 역시 자신의 일에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닐는지.
누가 약자고 누가 강자인지, 누가 악하고 누가 선한 사람인지…….
뜻하지 않게 독평사가 된 사람과 필요에 의해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싶어 했던 의뢰인 모두 약자가 아닐지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고 한 자리에서 외롭게 빙빙 도는 사람들의 모습들.

그들은 게으르고 싶어서 게으른 게 아니었다.
뭘 하고 싶은지를 몰라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몰라서 못하는 것과 하기 싫어서 못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나는 어떻게 난관을 극복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게으름을 죽여라>에서 주인공(나)은, 대학졸업 후 백조생활을 하고 있다. 스물여섯의 내가 빈둥빈둥 논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게으름치료센터’라는 곳으로 나를 보낸다.
그 곳에는 내 또래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는 ‘무능력’과 ‘게으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의도하지 않게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지 못한 나는 입을 닫고 잠만 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면서도 과연 내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에는 두렵고,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기에는 왠지 어색하고 속상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이런 내 생각들을 잠시 위로해본다.
나의 게으름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고. 내 주변의 상황들이 나를 조금은 더 게으르게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스스로를 조금은 위로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게으름을 죽여라>책 속에서 만났던 아홉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로웠다. 그들 모두는 세상의 틀 속에서 꿈꿨고 소리 내었다. 비록 누군가는 입을 닫아버렸고, 자살을 선택했고, 어쩔 수 없는 생존의 환경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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