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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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나서 부부간에도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서로의 늦은 귀가와 바쁜 업무, 일상에 쫓기다 보니 부부간에는 필요이상의 믿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우리 부부에게 “서로를 얼마나 믿으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이런 질문에 “부인을 못 믿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란 책의 주인공 공생원.

공생원 부부에게는 결혼한 지 스물 세 해 만에 아이가 생겼다. 마흔 다섯이면 손자를 보고도 남을 나이.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충분한 기쁨을 만끽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건만, 공생원은 부인의 임신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다.

아기를 갖기 위해 몸에 좋다는 약과 용하다는 의원들을 찾아다녔지만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그들 부부에게 서지남이라는 의원이 던진 한 마디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생원님이 문젭니다. 마나님 탓하실 것 없지요.”

부인에게 잘 하라는 의미로 했던 이야기가 공생원에게는 마나님의 뱃속에 아이가 자라는 280일 내내 불안하고 의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말로 작용했던 것.

결국 공생원은 두부장수부터 아내의 팔촌까지, 동네 남자들 모두 의심대상(?)에 올려놓고 관찰하기 시작한다. 마나님과는 어떤 친분이 있는지를 살피며 나름의 리스트들을 삭제해나간다.




공생원이 범인을 색출해나가는 이야기 고개에는 조선시대를 사는 평민들의 삶이 이웃의 모습을 보는 듯 가깝고도 흥미롭게 묘사되어있다. 인물을 한 명씩 지목해 진실을 헤쳐나 갈 때마다 소소한 시대의 일상과 인물 묘사 때문에 나도 모르게 “혹시......?”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니 처음 처를 믿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공생원 편에 내가 서 있었다. 오지랖 넓은 마나님이 혹시나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난 것은 아닌지…….




공생원과 마음을 합해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뒤로하고 문득, 글을 쓴 작가가 궁금해졌다.

언젠가부터 책을 펼쳐들면 ‘작가의 말’ 부분을 꼼꼼하게 읽는 버릇이 생긴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이상하기도 부럽기도,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작가는 주부의 삶을 살다 마흔 살에 소설가가 되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가정에서 주부로 살며 책 읽기를 꾸준히 해 온 것이 소설을 쓰는 힘을 주었다고. 작가가 쓴 이전의 책들도 색채가 짙을 것 같아 궁금해졌다.




각설하고,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딴 짓을 하는 버릇 때문에 읽는 진도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던 터라, 작가의 이야기를 알고 난 후, 소설 속 공생원의 추격이 상승선을 타는 듯 했다.

결국 범인은 누구란 말인가?

공생원과 내가 책을 읽는 내내 알고자 했던 질문에 마나님은 책의 말미 부분인 출산직전, 진통과 싸우며 일침을 가한다.

“당신 자식이 아닙니다. 제가 어느 화상의 쓰를 받아온 것 같습니까?”

“이 뱃속에 말입니다. 아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스물세 해 만에 생긴 아이가. 한데 허구한 날 이 배를 쳐다보면서 끄응, 아니면 후우, 하는데 천치가 아니고서야 그 속뜻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공생원의 깜찍한 발상과 어설픈 추리를 보면서 내 스스로도 진실과 거짓을 두고 싸웠다. 공생원의 엉뚱한 생각 편에 서 있다가도, 마나님의 진실(?) 편에 서 있기도 했다. 소설로 마당놀이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수많은 풍자와 해학을 소설 속에 담아 낸 것 같다.




공생원의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의 이야기는 단순 부부간의 신뢰만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쉽게 믿지 못하고 한 편이 될 수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비판하고 있는 듯 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도 삶을 살면서 공생원처럼 지극히 진실적인 것들을 거짓으로 생각하고 의심해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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